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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May 17. 2016

내향적인 사람으로 산다는 것

<월플라워>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


얼마 전, 나의 성격에 대해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여러 사람이 있는 모임에 잘 가지 않는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잘 만나지 않는 편이다. 하도 모임에 안 나가서 사람들은 나를 '레어템'이라고 부른다. 이런 나의 성격은 외국에서 지낸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보통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면 사람들은 한인교회에 간다거나, 적어도 한국인과의 모임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서도 혼자 지내고 한국인 모임에 잘 나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모임을 거절했으니, 상대방도 이런 나를 이제는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계속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의 모임에 나를 불렀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심지어는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 했다. 결국 나는 폭발했고, 이제는 그가 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 Daum 영화

어렸을 때 나는, 이런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을 원하고, 그들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무언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혼자 조용히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편이고, 다수의 사람들보다는 정말 친한 소수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더 편하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께서는 "제발 친구 좀 사귀어라. 너는 왜 맨날 만나는 애만 만나니"라고 하셨고, 나의 예전 남자친구는 "내가 없으면 넌 우리 과에서 왕따야. 제발 애들이랑 친해져 봐."라고 했다. 정말 다행히도, 이런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Introverted'라는 단어를 배우며 알게 되었다.


대학영어 시간이었다. 모든 기초적인 영어 과목이 그렇듯, 우리도 '성격'을 정의하는 단어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 원어민 선생님께서 'Extroverted'와 'Introverted'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그 당시 나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 날 나는 적극적-내성적이 아닌, 외향적-내향적이라는 새로운 단어의 조합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때서야 내가 비로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향성이란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얻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여가, 사람들과의 만남, 여행 등 외부 활동을 통해 충전하는 방식이라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주로 조용한 공간 혹은 정체된 공간에서 집중하면서 공부같이 한 자리에서 집중하면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충전한다. 휴식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나가서 산책을 주로 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색에 빠지거나 잠깐 낮잠을 자거나 하는 방식으로 취한다. ⓒ 위키백과

나는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금, 토, 일 중 하루동안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 반드시 남은 이틀은 혼자 보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에너지를 뺏기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일요일은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일요일에는 그 누군가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밖에 있을 때는 반드시 이어폰을 꼽고 있다. 내가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혼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생각들이나 느낌들을 적어두고 언제든지 꺼내보곤 한다.


이 외에도 내향적인 사람을 정의하는 특징들은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내향적인 것은 아니다. 친한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때로 우리는 외향적으로 변한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얼마 후, 나는 한 영화를 접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세 배우가 함께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나도 공감이 되고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이입을 해서 본 영화였다.

ⓒ Daum 영화

주인공 찰리가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월플라워>는 시작한다. 찰리는 '남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느라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고, 때문에 고등학교가 더욱 어색하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찰리는 우연히 '쿨'한 남매인 패트릭, 샘 남매를 만나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찰리가 참 사랑스러우면서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찰리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하는 행동이 나와 너무 닮아서였고, 안쓰럽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사람에게 상처 받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찰리가 나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해서였다.

ⓒ Daum 영화

우리는 둘 다 분명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 찰리는 글을 좋아하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월플라워>는 찰리가 친구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해서, 편지로 끝난다. 영화 전반부, 첫 영어 수업 장면이 참 흥미롭다. 영어 선생님이 1학년을 대상으로 팝 퀴즈를 내는데, 아무도 맞추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고 혼자 답을 노트에 끄적이는데, 이 모습을 우연히 선생님이 보게 된다. 비록 찰리가 손을 들어 대답을 하진 못했지만, 선생님은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찰리의 모습이 너무 '나' 같아서.


찰리는 글을 통해 자신을 다듬고 발전해 나간다. 이런 그의 모습이 나는 멋있어 보였다. 적어도 그에게는 '글'이라는 도구가 있기에, 자신만의 세계에서 바깥 세상과 소통할 힘을 얻는다. 나는 영화를 통해 힘을 얻는다. 이전의 글에도 썼듯, 나에겐 상황별 영화 리스트가 있다. 기쁠 때, 슬플 때, 헤어졌을 때 등등 상황별로 찾아보는 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몰라도, 그렇게 올바르게 찾은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정도 내가 진정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곤 한다. 우리 둘 다 글을 쓰고 영화를 보는 것을 혼자 행하지만, 절대로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다.

ⓒ Daum 영화

찰리와 나는 사람에 의해 크게 상처 받은 적이 있다. 찰리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소년이다. 이모에 의한 성폭행과 가장 친한 친구의 자살. 10대 소년이 겪은 일이라기엔, 너무나도 큰 시련이 그에게 있었고 그는 여전히 헤쳐 나가는 중이다. 이런 그의 시련들은 더욱 찰리를 혼자, 그리고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예민하다. 사람들의 말에 의해 상처를 쉽게 받고 내가 받은 상처만큼 남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한 때는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이었을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고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곱지 않은 시선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나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고 나는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그 후 이 기억이 사라질 때쯤, 나는 사람들의 무서운 이면을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친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서로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너무 무서웠다. 그 당시 어렸던 나에게 비춰진 사람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와 친한 누군가도 나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무서웠다. 그렇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나를 이해해주고 감싸 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때로는, 혼자 동굴 속으로 무한히 들어가곤 한다.

ⓒ Daum 영화

그리고 이런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다행히도, 우리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우리를 알아보고 이해해주고 곁에 있어준다. 비록 찰리는 고등학교 첫 날 만든 가장 친한 친구가 영어 선생님이었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찰리를 지지해준다. 찰리의 재능을 발견한 것도 영어 선생님이었고, 조용하고 내향적인 찰리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찰리에겐 그를 알아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경험이었고, 그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글을 써 보답한다. 이렇게 찰리를 정신적으로 지지해준 사람이 영어 선생님이었다면, 패트릭과 샘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찰리를 바깥 세상으로 끌어다 주었다.


찰리에게 있어서 패트릭과 샘은 단순히 점심 시간에 같이 밥을 먹어주고 하교하면 놀아주는 친구들이 아니라, 그의 삶을 알아보고 이면을 이해해준 진정한 친구들이다. 패트릭이 찰리에게 근사한 양복을 선물해주는 장면에서, 샘이 글을 좋아하는 찰리에게 타자기를 선물해주는 장면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패트릭이 선물해준 양복을 시도때도 없이 너무나도 열심히 입고 다니는 찰리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이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월플라워>를 통틀어서 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친구들끼리 모여서 비밀 산타를 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뽑은 사람을 위해 각자 선물을 하나씩 준비해왔는데, 찰리는 규칙을 어기고 모든 친구들의 선물을 준비해 온다. 심지어 각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물들로. 이 장면을 보며 몇 년 전 나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충분한 돈이 있어 고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십만원 씩 써가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었다. 가족들과 가장 친한 친구들 몇 명을 위한 선물로.


<어쩌다 어른>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의 골짜기에 어이없이 처박혀 울고 있을 때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줄 친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비록 나와 찰리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없지만,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줄 친구가 있으니 충분하다.
ⓒ Daum 영화

만약 아직도 내향적인 특성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생각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내향성'은 '활발함', '적극적'이라는 단어처럼 성격의 정의이자, 경향성이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을 외향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왜 항상 집에만 있니, 너는 왜 모임에 자주 나오지 않니, 너는 왜 친구가 몇 명밖에 없니, 이런 말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뿐더러, 그들을 더욱 더 내향적으로 만들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이 내향적인 것이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과 만화를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1. 내향성에 대한 친절한 정의 : https://namu.wiki/w/%EB%82%B4%ED%96%A5%EC%A0%81

2. 내향적인 사람들의 특징 : http://www.quietrev.com/6-illustrations-that-show-what-its-like-in-an-introverts-head/

3. 내향성에 대한 만화 : http://sg-mh.com/2120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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