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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Aug 30. 2019

나도 당신의 집이 되고 싶었어요

서로를 위해 언제든지 뛰어갈 수 있는, <유열의 음악앨범>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다만 혼자 있을 때만 그렇다. 그렇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잘 울지 않는 나를 보고 차가운 사람 내지 정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사이드 아웃> 편에도 썼듯,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낯간지러워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보며 혼자 우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행복해도 울고 슬퍼도 울었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볼 땐 슬퍼서 울었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볼 땐 행복해서 울었다. <안녕, 헤이즐>, <노트북>, <인어공주>가 나의 대표적인 눈물 수도꼭지 영화이다. 그런데 웬걸,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한국 영화를 보고 싶어 예매했던 이 영화가 또 하나의 눈물 수도꼭지 리스트로 추가될 줄은 몰랐다.


최근에 이별을 겪어서 인지, 이와 비슷한 <원데이>를 감명 깊게 봐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주르륵 눈물만 흘렸다. 영화를 다 보고 화장실에 가 거울을 보니 두 눈이 새빨개질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고개를 떨구고 오열을 했다.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장면에서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콜드플레이의 'Fix you'가 나와서일까, 혹은 나 역시 상대방이 나를 위해 뛰어왔으면 하고 바라서일까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내가 가장 꿈꾸는 그 장면이 그리도 슬플 수밖에 없었다.


ⓒ Daum 영화

나는 '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래도 나름 사랑이 넘쳐나는 가정에서 자라왔다고,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집 안에서도 나의 방, 그 안에서도 침대가 가장 좋다. 본래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어디로 여행을 가면 아예 잠을 자지 못하거나 하루 밤에도 수십 번은 깨는데,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작년 임용고시를 공부하면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족밖에 없었기에 '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세븐틴의 'Home'이라거나 방탄소년단의 'home'이 있다. 최근에는 'Way back home'이라는 노래에 꽂혔다. 가끔 나는 보면 하나의 단어에 꽂혀 그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만 듣는데, 대표적인 하나가 '우주'이다. 조금 이상한 취향이자 습관이기는 하다. 넬의 '지구가 태양을 네 번', 성시경의 '태양계', 방탄소년단의 '134340' 그리고 볼빨간 사춘기의 '우주를 줄게'까지, 우주 혹은 태양계가 들어가 있는 노래는 죄다 꽂혀서 그런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만들기까지 했다.


집이라는 단어가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공간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람 때문이다. 그 어떤 곳이 집이 될 수 있지만, 우리 가족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은 나의 집이 아니다. 집이 만약 사람이라면, 나도 누군가의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Daum 영화

나 자신을 절대적인 신이라고 믿는 나에겐 우리 가족 이외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 사람이 있다. 지난 글에도 썼듯 그 친구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나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나에게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가끔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작년 임용고시를 공부하며 많이 속상해하고 있었을 때에도 나에게 "누나를 믿는 나를 믿어"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정말 사랑스럽게도 한 때 나에게 그 친구를 질투하는 사람이 생겼다.


보통 나에게 친동생 같은 남사친이 있다고 하면 일단 경계한다. "그게 말이 되냐"부터 시작해 "진짜 한 번도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 적이 없냐"라고 의심한다. 여러 차례 얘기해도 그저 나에게 돌아오는 건 "걔를 더 이상 만나지 마"일뿐이다. 나의 감정을 유일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사라진다는 것은, 연애에 있어서 나에게도 또한 상대방에게도 독이 되었다. 다만 그는 좀 달랐다. 왜 그 친구에게만 속 얘기를 하는 것이냐고, 자기에게도 해달라고 사랑스러운 질투를 해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는 좀 더 빠르게 상대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이나 우울증 같은 것들을.


ⓒ Daum 영화

오래전부터 나는 외로웠다. 나의 유일한 친구가 나라서 "정말 혼자 잘 논다"라는 말은 수 없이도 많이 들었다. 가족으로는 혹은 그 친한 동생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다. 하루를 공유하고 속상했던 이야기를 말하고 나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그 과정의 기반에 사랑이 있다면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도 빨리 하고 싶었고 가정도 빨리 이루고 싶었다. 나의 집을, 우리의 집을 만들고 싶었다. 결혼을 빨리 하리라는 다짐은 수 차례 연애와 시어머니 같지도 않은 어머니를 겪으며 차갑게 식었지만, 지금도 역시 나 혼자 잘 나가기보다는 그 옆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현우는 외로운 존재이다. 억울하게 소년원에 들어갔고 좀 더 나은 인생을 사려는 그에게 친구는 함께 소년원을 갔던 고등학교 동창뿐이다. 그런 현우에게 미수와 은자는 가족 같은 존재이다. 언제든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그러기에 미수와 사랑에 빠지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은자를 찾아갔다. 그런 그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위태로워 보이고, 하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제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렇다고 미수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항상 자신을 '후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불안해하고 세상이 다 후져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어머니를 잃은 미수와 가족이 없었던 현우는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상실이 공허를 만들고 그 공허를 사랑으로 메운다.


ⓒ Daum 영화

어쩌면 당신처럼 속이 단단하고 이미 메워져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랑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은 비어있는, 어긋나 있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고 또 빠르게 후회하고, 그러면서 나를 "사랑해달라" 외치는 내가 많이 벅찼는지도 모른다. 그저 마냥 행복과 웃음만 넘치는, 언제든지 여유롭게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했던 당신을 조금은 늦게 이해했다. '너도 별로야? 나도 별로인데. 우리 별로인 애들끼리 힘내서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그와의 미래를 꿈꾸었다. 내가 꿈꾸는 가족상이 있는데, 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아주 무더운 여름밤 남편과 아이들과 반려동물들은 배를 까고 누워 자고 있다. 에어컨이 약하게 불고 선풍기가 탈탈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나는 부엌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학교 때쯤인가, 10년 전부터 꿈꿔왔던 나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상처 받은 영혼과 이미 완성된 영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너무 큰 꿈을 꾸었나보다.


ⓒ Daum 영화

나는 상처가 있는 사람이 좋다. 그것이 가족에 의한 상처이든, 사랑에 의한 상처이든, 혹은 다른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이든 상관없다.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라고 했던 것처럼 상처가 있는 사람이 더 예민한 법이고, 그렇기에 더 사랑을 중요시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집이 되고 싶다. 아니, 되고 싶었다. 세븐틴의 노래 가사가 이야기하듯 '네가 울 수 있는 곳, 나도 울 수 있는 곳'을 꿈꾸었다. 서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현우와 미수처럼 나는 당신의, 그리고 당신은 나의 집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간절히 그 집이 당신이기를 바라지만, 언젠가는 나 역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그 사랑이 나의 집이기를 바랄 것이다.


ⓒ Daum 영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엄마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급격하게 아파지셔서 힘들어하셨던 아빠를 위로하던 내용이었다. '그 힘든 마음 내가 덜어줄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요양병원에서 다녀오시는 길에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며 엄마는 운전하시던 아빠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알았다. 흔한 주례사로만 듣는 줄 알았는데,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고 곧 결혼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라, 나의 좋은 모습, 모자란 모습, 어쩌면 조금 못난 모습까지도 안아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었다. 내 편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 조차도 가끔은 내 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우연이 인연이 되고, 연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연인이, 서로의 품에서 언제든 쉴 수 있는 집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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