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루비 스팍스>
걷고 또 걸었다. 집에만 있기엔 하루 24시간이 너무 길었고 아직 개학을 맞이하지 않은 나는 그 24시간이 마치 48시간처럼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에만 있으면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게 되니 달리 할 것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흘을 내리 걷고 또 걸었다. 동네를 걷기도 하고 그와 걸었던 청계천을 걷기도 하고 한강을 따라 걷기도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영화를 보며 잠이 들었다. 조금씩 진정이 되고 슬픔에서 빠져나오면서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소개팅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단칼에 거절했다. 혼자가 막 익숙해지던 참이었고 지난 2년 간의 연애가 나 자신을 정말 말 그대로 탈탈 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존감도 많이 올라가고 내 삶을 많이 되찾긴 했지만 어찌 됐든 연애가 무서워진 건 사실이었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계속 설득을 하시니 문득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보다는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첫 브라질리언 왁싱에 도전했던 그 마음처럼 일종의 도전 정신으로 가볍게 나갔다.
실제로 만나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니, 좋은 사람이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나에 비해 상대는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세상을 잘 아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뽐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불 같은 나에 비해 상대방은 물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나처럼 불 같은 사람만 만나왔다면, 이제는 나의 불 같은 성격을 보완해줄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차이를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고 어느 정도의 난항을 예상했지만, 나를 배려해주고 나의 관심사를 알아가려는 그의 모습에 단 숨에 빠져들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기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나의 과오로 놓쳐버리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이 행복을 앞섰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의 과거를, 과거의 잘못들을 되짚어보았다. 나는 불 같은 사람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떤 것이라도 손에 잡혀서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공격적인 말을 내뱉고 또 그것을 빠르게 후회하는 멍청함도 함께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고 고집도 엄청 세서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나는 어느 하나 좋은 구석이 없는 사람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워낙 인간관계가 좁아 가족, 친구가 전부이니 이 사람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견디나 싶었다. 아, 우리 가족들은 차마 나를 호적에서 파버릴 순 없으니 그냥 견디고 지내나 보다.
그래서 상대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시기와 방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나의 좋은 모습만 보았을 텐데 굳이 미리 이것을 알려야 하나 싶었고 동시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한 확신이 들 때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시기를 정하자마자 끝나버렸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정하지 못했다는 점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때때로 내가 다짐했듯 감정을 조금 진정하고 어른스럽게 상대방을 대할 때가 있었는데, '와 나 엄청나게 발전했잖아! 대단해!'라며 혼자 자만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상대방은 괴로워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괴로웠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하면서.
<루비 스팍스>의 주인공 캘빈은 소설을 통해 자신의 완벽한 이상형인 '루비'를 창조한다. 그러다 갑자기 기욤 뮈소의 소설 <종이 여자>처럼 루비가 현실에 나타난다. 캘빈이 자신의 완벽한 이상형인 루비에게 만족하고 'happily ever after'했다면 좋으련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내 그는 외로움을 느끼고 자기 마음대로 그녀를 바꾸기 시작한다.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사려는 루비를 캘빈 자신만 바라보도록 집착하는 여자로 만들었다가, 다시 루비를 기쁘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가, 이래서는 안 된다 싶었는지 'just Ruby'로 인정한다. 하지만 루비가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자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고 결국 루비를 자유로운 몸으로 놓아준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캘빈이 루비를 대 놓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장면은 공포스럽다 못해 보는 내가 괴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런 루비를 바라보는 캘빈 역시 고통스러워한다. 자신은 절대로 루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이제 끝이 보인다는 사실을 그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이 떠올랐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서 계속 이기적으로 구는 나의 모습과 동시에 '끝이 다가오는지도 모른다'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기댈 곳이 없으면 미신을 믿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타로와 사주를 보러 갔다. 사주를 보는데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본래 자유롭고 활발하게 살아야 하는 사주라고 한다. 어느 한 곳에 있어서는 안 되고 다양한 곳을 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다만 이것은 타고난 기질이고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냐는 나에게 달려있다. 나가는 것을 귀찮아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남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 될 것이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그 기질이 잘 해소되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계속 내 속으로 파고들다 보니 상대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의 고민도, 다짐도 모두 소용 없었다. 상대의 연락에 집착을 했고 누군가와 만나 시간을 보내면 불안해했다. 그 시간에 나 역시 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연락이 오지 않는 상대방 자체에 집착했다.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자, 상대방 역시 자신을 잃기 시작했다.
사주를 보고 청계천을 걸으며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민해보았다. 예전에 나의 가장 친한 동생이 "누나는 워커홀릭인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완벽한 집순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다만 다시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도통 가만히 있지를 않고 계속 무언가를 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영화제를 다녔다. 대학에 오고 나서는 날개라도 단 듯 학생회에, 대외활동에, 공부에, 연애에 쉴 틈 없이 생활했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새로운 것과 나를 자극시켜줄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어쩌면 그 친구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나는 지금까지 나를 집순이라고 생각했을지를 돌아보았다. 나의 성격에 대한 나 자신의 부정적인 인식과 지난 1년 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끊어버린 SNS와 인간관계가 나를 더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래서 원래 나 자신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글은 일종의 나의 선언문이다.
우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일정한 시간을 정해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능하다면 30편을 채워서 설령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나의 글을 종이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또한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니고 싶다.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제를 직접 찾아가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 동시에 그동안 부족하고 느껴졌던 나의 실력을 올리기 위해 중국어 학원을 등록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하기 위해선 나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운동도 꾸준히 할 것이다.
또한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싫다고,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피했던 것들을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서 시작해 내 주변의 것들을 돌아보았다. 싫어도 해야할 일들, 싫어도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는 그의 말처럼, 나도 싸우지만 말고 조금은 유도리 있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조금씩 시작하니 후련해졌다. 내 삶을 되찾은 기분과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내 삶을 잃어버려 그 애착이 타인에게 전가되었다면, 앞으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내 세계를 지키고 동시에 그 사람의 세계를 함께 지켜줘야겠다. 나의 세계를 넓히고 싶다.
<루비 스팍스>에서 마지막에 캘빈과 루비는 루비의 기억이 지워진 채로 다시 만나게 된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의 서로의 기억이 지워진 채로 다시 시작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나의 실수와 과오로 엎질러진 관계를 다시 돌이킬 수는 없으며 나 역시 그것을 원하진 않는다. 게다가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그가 말했듯 우리의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루비처럼 혹은 클레멘타인처럼 모든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니 그 추억을 마음 한편에 고이 간직해두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 마음과 동시에 그 누군가를 만나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이정하
새를 사랑한다는 말은
새장을 마련해
그 새를 붙들어놓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려 보내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