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노트북>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하는 걸까
<노트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이다. 정말 어느 영화보다 이 영화만큼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노트북>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실화라고는 하지만 믿기지 않는 실화이다. 한 남자가 7년 동안 한 여자만을 기다린다니!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를 버리고 다시 그 남자에게 돌아오는 여자라니! 여자들의 판타지를 잔뜩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을 알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노트북>의 두 주인공 노아와 엘리는 성격이 비슷하다. 불같다. 정말 불과 불의 만남이다. 사랑도 화끈하게 하고 싸움도 서로 때리고 욕하면서 하고 화해도 극적으로 한다. 둘이서 싸우는 장면은 아직도 볼 때마다 놀란다. 나는 결코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만큼 내가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노아가 약혼자에게 가려는 엘리를 붙잡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냥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돼?
네 곁에 있으라고? 봐봐, 우리 벌써 싸우잖아.
우린 원래 그러잖아! 우린 항상 싸운다고. 너는 나한테 이기적인 놈이라고 욕하고 나는 너에게 구제불능이라고 욕하지. 근데 넌 진짜 그렇잖아.
나는 네 감정 건드리는 거 무섭지 않아 너는 2초만 지나면 바로 까먹고 괜찮아지니까.
그래서?
엄청 어려울 거야 우린 매일 이렇게 싸워야겠지. 하지만 나는 괜찮아 너랑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사실 굉장히 로맨틱한 장면이다. 매일 이렇게 싸우더라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는 노아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인데, 나는 굉장히 놀랐다. 남자친구가 나에게 '구제불능'이라 욕하면 나는 너무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이다. 대사에 나와있듯 정말 노아와 엘리는 자주 싸운다. 그것도 엄청 격하게. 그 장면을 보면 또 놀란다. '나는 저렇게 못 싸울 것 같은데? 정말 사랑하는 거 맞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 둘이 서로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같이 있는 이유는 서로 사랑해서이다. 동시에 둘의 사랑의 방식이 같아서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춰주게 된다. 상대방이 게임을 싫어하면 게임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걸 싫어하면 마시지 않는다. 그러다가 점점 자신이 그동안 참고 있었던 걸 하나씩 시작하게 되고 결국 그러다 많은 커플이 헤어진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 애초에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습관이 너무나도 견고하고 소중해 상대방이 그것조차도 건드리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방식이라는 건 쉽게 마음먹은 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자신의 화를 내는 방식, 화해를 하는 방식 모두 변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조금씩 깨달았다. 연애 초기에는 "우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그러니까 서로에게 조금씩 맞춰가자"라고 말했던 것이 언젠가부터 '바뀔 수 있는 것'과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이상형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추가되고 구체화된다. 중학교 땐 좋아하는 연예인처럼 '피부가 하얗고 목젖이 선명하게 보이는 남자'였다면 지금은 '나보다 키만 크면 되고 운동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나와 많이 겹치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남자'이다. 뭐 이렇게 바라는 것도 많은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이상형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거나 추가되는 것 같다. 외로운 연애를 오래 한 내 친구는 '내가 부르면 바로 달려오는 남자'이고 자기 생활을 중요시하는 친구는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남자'이다. 이렇게 각자 원하는 사랑의 모양은 다르다. 하지만 최근 나의 이상형에 추가된 것이 있다. '나와 사랑의 방식이 같은 남자'
사랑의 방식이라 함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선물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담은 편지로, 어떤 사람은 이쁜 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세상엔 무수한 사랑의 모양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은 '자주 보는 사랑'이다.
상대방이 나를 항상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으니 00을 만나야겠다!"라고 하며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고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면 "00가 요즘 힘들었구나! 그래, 이따가 치킨 먹자!"라고 했으면 좋겠다. "날씨가 좋으니 나중에 날씨 좋을 때 만나면 좋겠다"나 "나중에 만나면 치킨 먹자"가 아니라. 날씨는 오늘만 좋을 수 있는 거고 치킨을 내일이면 안 먹고 싶은 건데, 미래를 기약하는 사랑은 너무 싫다. 현재, 지금, 여기서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일 년 이상 그와 만나오며 그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애초에 그는 나와 먼 거리에 살았고 그 먼 거리를 자주 찾아올 정도의 체력적 소모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자기 스케줄을 중요시했다. 운동을 해야 하면 그 날은 반드시 해야 하고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잡는 약속도 있었다. 즉흥적인 만남은 있을 수가 없었다. 자주 만나는 걸 원하는 나는 그의 앞에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비참해 보였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가 나와 헤어지고 싶어 했을 때, 모든 통화와 문자가 나에겐 온 진심을 담을 정도로 애절하고 간절한 것이었는데 수업을 들어가야 한다며 내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끊고 가버렸다. 그 사람의 단호함에 정말 놀랐었다. 헤어지고 싶어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내가 간절해 보였으면 수업이고 뭐고 나와의 통화가 더 소중한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했었다. 그런 사랑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모든 걸 저 버리고 나에게 와줄 수 있는 사랑을 원했다.
자신의 것을 소중히 하는 그이기에 나는 쉽게 나와 자주 만나자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나의 스케줄을 중요시하고 엄청나게 바쁜 졸업반 대학생인 것처럼 굴었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혹시라도 그가 불편해할까 봐, 자꾸 만나자고 하는 나를 싫어할까 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어떤 날이 되면 그가 보고 싶어서 참지 못하는 날들이 생긴다. '오늘은 꼭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거절을 당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 나의 용기를 바닥까지 끌어모아 그에게 "오늘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이따가 수업 끝나고 만나자!"라고 하면 어김없이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나 오늘 팀플 있어."
그를 자주 보고 싶어 하는 내가 틀린 것도 아니고, 팀플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야 하는 그가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자꾸만 비참해졌다. 나는 그저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는데 계속 거절당하니 '나란 존재가 저 사람에겐 스케줄보다 훨씬 덜 중요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저 나는 내가 비참함을 느끼기 전에, 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기 전에 당신의 스케줄을 알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을 일이었는데.
사랑의 방식, 싸움의 방식, 화해의 방식.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달랐다. 나는 자주 보는 사랑을 원하고 싸우는 것보다 서로 고민을 하고 시간을 좀 가진 뒤 다시 이야기하는 방식이 훨씬 좋다. 하지만 수 차례 서로 변하려는 나의 시도와 그의 시도가 번복되면서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의 방식을 맞춘다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맞추기까지 그 과정 속에서 언제나 한 사람은 참아야 하고 홀로 힘들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중 참았던 사람은 그였다. 모든 연애에서 이기적이고 화를 내는 역할을 맡았던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에게도 똑같이 대했고 나의 방식이 '틀리다'라고 말하기까지 그에겐 오랜 시간과 고통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진작에 맞춰나가야 할 사랑의 방식이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야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화를 낼 때마다, 아니 화를 내면서까지 서로 맞춰가려 할 때마다 지레 겁 먹고 도망친 나의 탓이다.
사랑의 방식은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기에 상대방이 표현해도 나는 그 사랑을 모를 수 있고 내가 사랑을 표현해도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상대방은 사랑을 표현했는데 나는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꾸 오해가 생기고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묻게 된다.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 다른데도 말이다.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니 당연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노트북> 속 노아와 엘리의 러브스토리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둘의 사랑의 방식이 같다는 점이다. 적어도 서로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마음으로 모두 알 수 있으니까. 나에겐 화려한 선물이나 깜짝 방문 같은 건 없어도 된다. 매일 같이 만나 하루는 나란히 누워 영화를 보고 하루는 작은 카페에 앉아 초코 케이크를 먹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