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어느 딸의 이야기, <레이디 버드>
우리 집은 딸만 둘이다. 게다가 외할머니와 같이 살아서 여자가 4명, 남자가 1명으로 여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여기서 세 모녀가 함께 지낸다는 말은 매일 같이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과 같다. 간장 종지만큼의 밥을 먹는 나에게 할머니는 언제나 고봉밥을 먹이려 하다 싸우고 아침에 옷을 찾던 동생은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꽁꽁 숨겨 놓은 것을 발견하고 싸우고 개어놓은 옷을 우리들이 가져가지 않자 또 싸우고, 매일 같이 싸움의 연속이다. 할머니와 이렇게 자주 투닥거리면 엄마랑은 싸우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안 씻는다고 구박하고 방이 돼지우리 같다며 구박하고 주말만 되면 왜 맨날 자냐고 구박당하고, 세 모녀는 각기 다른 사람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일 같이 전쟁을 치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 집에서 최대한 빨리 탈출하고 싶었고 그 방편 중의 하나가 바로 교환학생이었다.
프랑스와 한국의 시차는 8~9시간이었다. 내가 잘 때쯤이면 한국은 아침을 먹는 시간이었고 내가 일어날 때쯤이면 한국은 오후였다.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은 주로 오후 시간대였고 한국에서 그 시간은 새벽 3~4시였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한 것이, 엄마는 언제나 나의 연락에 답장해주었다. 내가 카톡을 하는 것이 한국 시간으로 아침이든, 오후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엄마는 언제나 나의 연락을 받아주었다. 타지에 나가 있는 딸이 걱정되어 연락을 받아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 엄마는 잠들면 누가 업고 데리고 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 정도로 깊이 잠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새벽에도 나의 연락을 듣고 깨어 답장을 해주었다. 어쩌면 그때 서야 알았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날 사랑하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나 가족들이 프랑스로 여행을 왔다. 2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다사다난했다. 우리 모두에게 첫 장기여행이자 가장 멀리 온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그나마 나았지만 영국에 가서는 도착하는 날부터 돌아가는 날까지 매일 같이 싸웠다. 오랫동안 그리던 영국을 여할 수 있게 되어 참 기뻤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이 돌아가는 날, 공항버스에서 가족들을 배웅하는데 엄마가 울며 미안하다고 했다. 너도 많이 힘들고 부담스러웠을 텐데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살면서 부모의 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던 나는 많이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이모의 말에 따르면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울었다고 하던데, 엄마에게 많이 미안했고 안쓰러웠다.
이 영화의 모녀도 나와 우리 엄마, 혹은 당신과 당신의 엄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식을 최대한 좋은 길로 이끌려는 엄마와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딸, 혹은 자식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와 나의 삶의 방식대로 살고 싶은 딸. 사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딸 혼자만의 성장사를 그리고 있지는 않다. 엄마와 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 두 사람이 같이 성장한다.
크리스틴은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화가 난 엄마는 결코 그녀를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크리스틴’은 부모가 붙여준 이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이디 버드’는 ‘숙녀’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자식은 부모의 영원한 아이라는 말이 있듯이, 엄마에게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가진 어른이 아니라, 그저 아이일 뿐이다.
영화를 보다 참 많이 공감되고 그래서 눈물이 났던 장면이 있다. 고향을 떠나 동부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싶었던 레이디 버드와는 달리 엄마는 딸을 자신의 옆에 두길 바란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장학금을 준비하고 결국 동부로 떠난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레이디 버드와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는데, 그 시간 동안 레이디 버드는 울면서 엄마에게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애교가 많은데 소심해서 아주 작은 일에도 혼자 삐친다. 예를 들어, 내가 “허니브레드 먹고 싶다”라고 혼잣말을 하면 그걸 듣고 ‘이따가 저녁에 카페를 가야겠다!’고 혼자 기대하다가 정작 가자고 하면 내가 거절해 삐쳐버린다. 이러는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 정도로 화나는 일은 드물다. 19살 때 엄마 몰래 귀를 뚫었다가 3일 동안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좋은 귀걸이를 사주겠다며 나를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셨다. 큰 일은 아니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결정해버린 것이 아무래도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 나는 언제나 엄마의 작고 예쁜 새였으니까.
몰래 귀를 뚫는다 한들 혹은 몰래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하려 한들, 우리는 엄마의 딸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도 엄마였고 가장 기쁠 때 옆에 있어줬던 것도 엄마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항상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그냥 작고 예쁜 새가 아니라,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멋진 새이길 바랐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다니고 싶었고 멋진 직장을 가지고 싶었다. 어디 가서 엄마가 나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길 바랐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고 나에게 칭찬 한 마디 안 해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그런가, 이번에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서 그런가, 사실은 나 혼자만의 오해에 갇혀 있었다.
프롬에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며 레이디 버드는 엄마에게 드레스가 어떻냐고 묻지만 엄마는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이를 듣고 레이디 버드가 화를 내자, 엄마는 “솔직하게 말하라며”라고 말한다. 레이디 버드는 예쁘던, 예쁘지 않던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왜 엄마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지 않냐고 화를 내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I want you to be the very best version of yourself that you can be
나는 지금 너의 모습이 너의 인생에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어쩌면 이 말은 엄마의 바람이기보다는 엄마가 우리를 보는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내가 예쁘던 예쁘지 않던, 키가 크던 마르던, 좋은 대학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엄마에게 보이는 우리는 언제나 ‘best version’이다. 그 사실을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평생을 엄마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 발버둥 치던 나였는데, 나는 이미 엄마의 눈에 최고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읽는다고 해서, 이 글을 썼다고 해서 나와 엄마의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엄마에게 가서 “사랑해”라고 한다거나 엄마 어깨를 주무른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엄마가 혼자 TV를 보고 있으면 같이 옆에 가서 보고, 엄마가 동생을 욕하면 같이 욕해주고, 엄마가 허니브레드를 먹고 싶다면 같이 가서 먹어주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