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을 넘어 보편적인 모든 인간들의 성장, <캡틴 마블>
나는 강한 여성에게 끌린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순간부터 그랬다. 잠자코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을 기다리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머와 재치로 왕자님을 사로잡은 '신데렐라'를 더 좋아했고 <프린세스 다이어리 2>에서 여왕이 되기 위해 감히 누군가와의 결혼을 거부한 미아 공주를 사랑했으며 <알라딘> 속 진취적이고 용감한 자스민 공주에게 열광했다. 누군가는 이를 페미니즘이라 부르지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당차고 강한 여성을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한 것에 끌리는 것은 아마 모든 인간에 해당될 거라 생각한다.
동시에 나는 강한 여성을 꿈꾼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자신의 연애사를 장대하게 풀어쓰는 캐리보다는(사실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의 과거 연애사에 대해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돈이 많고 자신의 욕구에 당당한 사만다를 훨씬 더 좋아했다. 아니,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사만다가 나의 이상향이다. 능력 있고 돈 많고 나의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또한 내가 원하는 연애를 할 수 있는, 그런 멋진 현대 여성이 내가 꿈꾸는 여성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여성이 되는 것은 많은 비난을 받고 끊임없이 도전당하는 힘든 일이다.
영화 <캡틴마블>은 개봉 전부터 일부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디즈니에서 요즘 PC 혹은 페미니즘 요소를 많이 넣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말 웃기게도, 오히려 개봉 이후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생각보다 그런 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나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캐롤 댄버스가 여성인 것 외에는 미드 <에이전트 오브 쉴드>를 영화로 옮겨놓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느낀 이유는 <캡틴마블>이 페미니즘 영화라기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한 인간의 성장 스토리 이기 때문이다.
<캡틴마블>에서 가장 희열을 느꼈던 장면은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그렇듯이, 캐롤이 "나는 그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거대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수 년동안 자신의 능력을 자제해야 했던 캐롤이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터뜨리면서 했던 대사이다. 그 장면이 나의 삶이든, 연애사든 모든 부분에서 큰 울림을 주었다.
지금껏 많은 연애를 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헤어졌다. "내가 너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하는데 왜 너가 더 성적이 좋아?", "좋겠다, 너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직업이 있으셔서"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하나 같이 나에게 열등감 혹은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있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런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나와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여자 쪽 하객이 훨씬 많을 것 같아서'라고까지 했다. 대부분의 결혼식에서는 남자 쪽 하객이 훨씬 많은데, 우리는 반대라 자기 부모님의 체면이 서지 않을 거라는 이유였다.
이런 이별이 계속되자 친한 동생에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본 적도 있다. "내가 나보다 훨씬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직업도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때서야 저런 말들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묻자 그 친구는 나에게 "누나보다 잘나지 않아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라고 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저런 말을 듣는 일이 왜 그리 나쁘냐고 물은 적도 있다. 너를 치켜세워주는 거다, 너에게 잘났다고 해주는 거다 등등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저런 말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첫째, 상대방의 자존감이 낮아 보여서 이며 나는 나의 자존감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일 생각은 없고 둘째, 저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남자친구로부터 듣고 싶지 않으며 셋째, 내가 직접 이룬 업적들 혹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것들이 단순히 나의 운으로 치부되는 것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운이 충분히 작용했을 수도 있다. 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 넘치는 것은 없지만 부족함 없이 자라왔으니까. 다만 수많은 나의 노력들이 타인의 방향을 가리킨다면, 나의 애쓴 과거들이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맞아요, 나 잘났어요"라고 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저 한 마디를 하게 되는 순간 나는 '공주병' 혹은 '지 잘난 맛에 사는 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연도 전에 영어캠프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게임을 하며 같은 반 친구들의 오답을 고쳐준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그 이후로 설령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가 영어 문장을 틀려도 가만히 있었고, 영화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가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
혼자 몇 시간 동안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국인이었는데, 자신이 성형외과 의사라며 한국의 사회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우린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영어캠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말해주었고 아저씨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영어를 매우 잘하는데 그런 말들을 신경 쓰거나 주눅 들지 마. 너가 잘하는 것을 마음껏 뽐내며 살아."
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변화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인정하고 이것을 이야기하기. 물론 어떤 사회에서는 이런 행동들을 아니꼽게 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당당해지는 것과 주눅 들면 감추고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며 이를 통해 얻은 것들은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좋은 우대를 받을 권리가 있다. 예쁜 것 혹은 날씬한 것들은 타인으로부터 주어진 권력이지만, 나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성과들은 오로지 내가 스스로 나에게 부여한 권력이며 나는 이에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영화 <캡틴마블>에서 캐롤 댄버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도전받고 평가받는다. 욘-로그로부터 자신의 힘을 억누르라고 명령받고 그 힘을 부정당하기도 한다. 그런 캐롤의 모습은 절대로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모습이 아니다. 욘-로그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나는 그런 캐롤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떠올렸다. 전 남자친구를 만나며 나는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했다. 그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하고 행동을 하는 등 오로지 그가 원하는 것, 그의 취향에 따라 행동했다. 어느 순간 원래 나의 모습을 없어졌고 그에 의해 만들어진 '나'만이 남아있었다. 어떤 이는 그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결코 사랑이 아니다.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서로 그 존재의 가치와 본질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마지막에 그와 헤어질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껏 나는 너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애완견'이었다고. 사랑하는 여자친구 혹은 함께한다는 의미를 가진 반려견 조차 아닌, 한 사람에 의해 꾸며지고 만들어지는 '애완견'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연애들은 나를 좌절케 하고 외롭게 하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나 스스로를 더 당당하게 마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이런 이유로 전 남자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고맙지 않다. 나 자신에게 고맙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반성하고 성장한 나 자신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캡틴마블>은 나에게 몇 가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 나 자신에게 당당해질 것. 둘째, 그 당당함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표현할 것. 셋째, 다양한 여성상의 존재이다.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캡틴마블과 똑같이는 아니어도 그렇게 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강한 여성이 되고 싶다.
한 때 "너는 왜 이렇게 순종적인 여자친구가 될 수 없어?"라는 말을 들었던 나에게 <캡틴마블>은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반드시 순종적이고 말 잘 듣는 여자친구가 될 필요 없다는 것, 동시에 그 누구보다 노력하고 내가 이루어낸 것에 당당할 수 있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여성상들이 충분히 존중받고 이해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