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사정으로 책임을 떠안게 된, <우리집>
윤가은 감독님을 처음 뵀던 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감독님이 아마도 <우리들>을 찍기 전 여러 독립영화를 만들고 계실 때쯤이었다. 옆에 있던 친구로부터 "저 감독님 영화가 그렇게 따듯하다더라"라는 말만 듣고 직접 대화하지는 못했다. 윤가은 감독님을 두 번째로 뵀던 건 그로부터 일 년 뒤의 청룡영화상에서였다. 그 해 신인감독상을 받으셨는데 무대 뒤에서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영화 잘 보고 있어요. 수상 축하드려요!"
<우리집>을 보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저 모든 일들이 아이들의 탓이 아니라 어른들의 사정 때문이라는 것, 이 세상에는 부모다운 부모가 많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저런 친구들을 수 없이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임용고시를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건 순전히 교생 때 만난 아이들 때문이었다. 학교 후배이긴 했지만, 정말 밝았고 그 친구들의 삶에 있어서 내가 조그마한 영향을 준다는 일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느껴졌다. 교사를 택한 사람들 중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문이 좋아서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나는 나의 전공이 너무 싫었다. 순전히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나와보니 정말 어려웠다. 이백 몇 명이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설령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기 다른 사정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그것을 받아주기엔 내 경험의 세계가 너무 좁았다.
<우리집>에는 두 가정이 나온다. 첫 번째는 하나의 집, 두 번째는 유미의 집이다. 하나의 집은 경제적으로 어렵진 않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고 남매가 모두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은 갖추고 있다. 하나의 집의 문제는 바로 부모 자체이다. 부와 모 각각 띄어놓고 보면 꽤나 괜찮은 보호자이지만, 그 둘이 함께하면 만날 때마다 싸우고 심지어는 자식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경제적으로 충분해도 보살핌이 없다면 그것은 가정으로서 실질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의 집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유미의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부모님은 돈을 벌기 위해 지방 어딘가의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 자주 직장을 옮기는 부모로 인해 자매는 이사를 자주 해 유일한 친구가 서로이다. 엄마는 핸드폰마저도 고장 나 문제가 생겨도 쉽게 연락이 닿지 않는 실정이다. 때때로 두 자매를 돌보러 오는 것은 삼촌일 뿐이다. 살림도, 밥도, 청소도 아직 하지 못하는 두 어린 자매가 자신의 집을 꾸려나간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지켜보거나 상담하다 보면 두 사례 모두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 같은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관심이 많다. 가정에서 받지 못한 애정을 학교에서 얻으려 한다. 내가 무엇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하고 책상 위에 무엇이 있는지 모두 확인하고 알고 있다. 때로는 나에게 작은 간식이나 자신이 직접 만든 그림 같은 것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유미 같은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낮다거나 움츠러들어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티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친구들은 자신의 아픔에 둔감하다. 평생을 당연하게 그렇게 살아왔고 친구들 역시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환경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비관적일 뿐이다. 꿈이 없다거나, 목표의식이 없다. 어떤 노력을 해도 부모의 경제력이 결정적인 방해 요소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양한 아이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힘이 빠진다. 아동 학대 혹은 방조의 연장으로 아동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보호자로서의 교사는 역할이 굉장히 적다.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고 포용하기엔 나의 경험의 폭이 너무 좁다. 교사는 대부분 모범생이고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밟아온 사람들이라 반항을 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지난 글에도 썼듯 나는 꽤나 오랫동안 나 스스로의 불행에 빠져있었다. 나는 첫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책임감을 먹고 자랐고 성인이 되어 만난 첫 남자 친구는 나를 두고 바람을 피기 일쑤였다. 과거의 망령들이 잊을만하면 나를 쫓아온다며 남들에게 불행 배틀을 신청하곤 했지만 사실은 나는 그냥 적당한 집에 장녀로서 누구든 겪을 법한 전 남친 썰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불행으로 삼고 오랫동안 일부러 상처에서 벗어나지 않고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불행에 밀어 넣는 나와는 달리, 하나는 자신의 집과 유미의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의 성숙도는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하나는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자신의 가정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질 어른이 너무 일찍이 되어버렸다. 매일 매일 저녁 식사를 준비해 가족들을 기다리고 어떻게든 부모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인 가족 여행을 제안한다. 유미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는 유미의 집에 수시로 찾아가 지켜주고 유미의 부모님을 먼저 나서서 찾아가자고 한다. 그 조숙함이 누군가에게는 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그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일찍이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너무 많다. <우리집>에도, 우리 학교에도, 어쩌면 내가 마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도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아이들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어제 참석했던 영화 모임에서 누군가가 말했듯, 문제의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야기를 하고 관객을 생각을 한다. 그 중에는 나처럼 아이들을 직접 대하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조금씩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통해 저 건너편 환상으로만 가득 찬 동네 속에 하루 하루 겨우 먹고 살고 있는 모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듯, 우리는 <우리집>을 통해 우리가 속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범위의 환경인 집 조차도 지킬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나에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