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6

by 이상훈

(5) 남겨진 것들


스콜라관(가정관을 리모델링한 건물 이름) 봉헌식이 시작되었다. 스콜라관 앞에서 미사로 진행되었는데, 원로 교사 몇 분이 오셨고, 박대용 선생님과 포옹을 하고 계셨다. 다들 연세가 90이 가까우신 분들이라 움직임이 불편해 보이셨지만, 감정은 젊은 누구보다 또렷하게 느껴졌다.

30여 분간 스콜라관 봉헌식이 진행되었고, 이제 박물관 개관식이다. 나는 박물관 불을 다 켜고, 내가 준비한 음악과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개교 기념사진을 볼 수 있게 배치해 놓았다.

박대용 선생님께 먼저 커다란 1953년 5월 21일 찍은 사진을 보여 드렸다.

“이분이 선생님 맞으시죠?” 대답이 없으셨다.

다만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동안 그 사진을 보고 만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천천히 박물관을 둘러보셨다.

5평도 안 되어 보이는 이 작은 박물관의 물품들을 꼼꼼히 둘러보셨다. 한참 동안 말없이 다들 둘러보셨다. 앨범도 들춰 보았고, 자신이 기증한 물품들을 다시 한번 보셨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영상을 천천히 보셨다. 10여 분 분량의 이 영상은 희망고등학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 주는 영상으로 내가 몇 날 밤을 생각한 뒤 1시간 만에 만든 것이다. 만든 시간보다 생각이 훨씬 더 중요했다.

“언제든지 오셔도 됩니다. 박물관은 늘 열어 두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90세가 넘는 이분들이 스스로 학교를 다시 방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전이 갔고, 퇴직 원로 교사 선생님들은 교장실에서 차 한 잔을 드시고 다들 집으로 가셨다. 박대용 선생님은 시내에 사는 따님이 와서 모시고 가셨다.

이날은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라 더 정신이 없었고, 박물관 개관식을 마치고 나는 교무실로 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살짝 잠이 들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깊은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잤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여보세요.”

“이 선생님.”

“아, 박대용 선생님.”

“고마워요. 고마워요. 잘 보았어요. 잘 보았어요.”

더 이상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나는 가슴 한구석이 갑자기 아려 왔다. 도대체 90이 넘으신 노인분에게 학교가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그분에게는 직장 이상의 무엇이었나 보다. 내가 아직은 알 수 없는….

그리고 또 1년이 지나갔다. 2017년이다.

“박대용 선생님, 이상훈입니다. 잘 지내시죠?”

“잘 안 들립니다. 크게 말씀해 주세요.”

“아, 네 이상훈입니다. 건강하신가요?”

“아, 이 선생. 난 잘 지내오, 다리가 아파 외출을 못 합니다.”

“네, 건강하신지요?”

“괜찮습니다.”

“박물관은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많이 와 보곤 합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럼 건강하십시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분이 나에게 보내는 고마움의 표시는 수화기 너머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늙어 갈 것이다. 그리고 늙어 가고 있다. 늙어 감에 대해 두려움은 없지만, 지금 내가 느꼈던 이런 감정들에 무뎌질까 그게 제일 두렵다.

그래서 무뎌짐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 박물관에 와 볼 생각이다. 여기에는 박대용 선생님의 흔적이 그리고 나의 흔적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추신) 2022년 5월 20일 금요일 오후 5시 26분, 박대용 선생님이 나에게 문자를 했다. 핸드폰은 박대용 선생님 것이 맞는데, 문자는 사모님이 쓰신 거다. “박대용 선생님이 오늘 천국 가셨습니다.”

나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길 한편에 차를 세워 두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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