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나 잘하세요’
2학년이 되어서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 즐거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나는 1학년 때 최 선생의 폭력에서 벗어나니 발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고, 학급에서 부반장도 되었다.
여전히 나의 엄마는 바쁘셨고, 반장과 부반장 엄마들이 학교를 번갈아 가며 찾아오실 때 우리 엄마는 못 오셨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학교에 학부모 연수 같은 게 있는 날이면 반장, 부반장 엄마는 의무적으로 와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1980년대는 엄마들이 일하던 시대였나 보다. 많은 엄마들이 학부모 연수에 오지 못했는데, 그때마다 문 선생은 집에 전화 걸어 보라고 했다. 집에 걸어 봤자 아무도 없는데, 왜 전화 걸라고 하는 것인지…. 학교 정문 옆 공중전화로 가 보니 나 같은 애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난 전화도 걸지도 않은 채 교실로 돌아가 엄마가 집에 안 계시다고 하니 문 선생은 “너는 책임감이 없는 아이야.”라고 하며 미간을 좁혔다.
2학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별 수업이었다. 문 선생은 무조건 조를 편성하여 수업을 했는데, 우리는 6명 정도씩 책상을 붙여서 앉아 조별로 대답하기도 했고, 게임도 하고 했다.
잘하는 조에는 교실 뒤편 조별 현황판에 문 선생이 스티커를 직접 붙여 주었다. 문 선생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차별을 하긴 했으나 폭력 교실의 최 선생보다는 훨씬 괜찮아 보였다. 나는 우리 조의 조장이었는데, 우리 조는 다른 조보다 늘 월등하게 대답도 잘하고 숙제도 잘해 왔다.
혹시 숙제가 제대로 안 된 아이들을 위해 아침에 내가 대신 숙제를 해 주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 조는 조별 스티커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문 선생은 수업을 즐겁게 진행했고 아이들의 대답도 잘 이끌어 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나를 엄청 싫어하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게 그 이유일 줄은 몰랐다.
문 선생은 2학기 정도 토요일 수업에 아이들에게 일요일에 할 숙제를 하나 내줬는데, 그것은 일요일에 교회를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조원 모두 교회를 다녀오면 월요일에 스티커를 하나 붙여 준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다녀왔다는 증거로 교회 ‘주보’를 가져오라고 했다.
당시 나는 성당에 다녔고, 문 선생에게 “선생님, 성당 주보도 되나요?”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못 들은 줄 알고, “선생님, 성당 주보도 되나요?”라고 되물었을 때, 문 선생은 우리 엄마가 학부모 연수에 참석하지 않은 날처럼 미간을 계속해서 좁혔다.
이후 나는 미술 시간에 뭘 그려도 뭘 만들어도 문 선생의 핀잔을 받았고, 노래를 불러도 음이 틀렸다는 둥 아이들 앞에서 되게 잘못한 학생처럼 취급받았다. 당연히 우리 조의 스티커 개수는 교회 사건 이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문 선생은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않은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월요일 아침부터 화를 냈으며, 그 화가 싫어 몇몇 아이들은 교회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은 다른 아이들의 신고로 금방 드러났으나, 거짓말을 한 아이들은 다른 교회에 다녀왔다는 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이 이어졌다.
월요일 아침이면 아이들은 취조를 기다리는 죄인이 되어 갔다. 일요일에 교회에 간 아이들은 교회에 안 간 아이들을 고발하는 일로 월요일을 시작했고, 교회에 안 간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긴장하기도 했다.
문 선생은 간식을 먹을 때도 기도했으며, 아이들에게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믿음을 심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대놓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그게 박해 비슷하게 나를 괴롭혔으나 시간은 금방 흘러 예수쟁이 문 선생과도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