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환자입니다
4학년이 된 나는 운 좋게도 1학기에 반장에 임명되었다. 2, 3학년 때는 부반장만 했는데, 나서기 좋아한 나는 1학기 때부터 반장 후보로 나갔다. 많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아 당당하게 반장이 된 나에게 양 선생은 차돌같이 똘똘한 반장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시기 아이들이 선생님들 칭찬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정작 선생님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작은 칭찬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밥이며, 반찬이며, 영양제인 것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인 셈이다.
양 선생은 외모가 가수 이선희 스타일이었는데, 결혼을 하기 전이라 그런지 그동안 내가 만난 담임 중에 가장 젊었으며, 수업도 엄청 재미있게 했다. 그런데 가끔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낸 적이 있는데, 나는 이미 1학년 때 충분히 면역력이 길러져 별로 동요하지는 않았다.
양 선생은 어느 날 아침 수업 시작종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교탁 옆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보통 종이 치고, 담임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는데 그날은 아예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벽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청 떠들다가 선생님이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상했는지 조용해졌다. 간혹 속닥거리는 소리만 교실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담임선생님을 보니, 답답하기도 했고 무슨 일인가 하고 양 선생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런데 양 선생은 이번에는 책상 아래만 보았고, 급기야는 울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이 눈물만 떨어지는 그런 울음이었다. 아이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했으나 양 선생은 아무 말 없이 거의 한 시간을 울었다.
그게 3월 중순의 일이었는데, 이게 시작이었다. 양 선생은 6학년 담임인 어떤 남자 선생님과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그 남자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우리 교실에 매일 찾아오는 것으로 우리는 둘의 결혼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언젠가 토요일에는 양 선생이 나에게 쪽지를 주며, 학교 앞 다방에 가서 그 쪽지를 6학년 남자 선생님께 전달하라고도 했다. 임 부반장과 나는 다방에 가는 길에 그 쪽지를 열어 보았는데, 대충 “더 이상 우리는 만날 수 없다. 그러니 연락하지 마라.” 뭐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쪽지를 다시 접어 다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남자 선생님은 없었다. 별의별 심부름을 다 시킨다고 생각하며 양 선생에게 6학년 남자 선생님이 거기 없어서 쪽지를 못 전해 줬다고 했다. 월요일 아침 그 남자 선생은 우리 교실로 화가 난 얼굴로 찾아왔는데, 양 선생은 고개를 숙인 채 복도에서 그 남선생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다. 그 남자 선생은 교실 문을 벌컥 열더니 나에게 쪽지를 왜 전달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며 핀잔을 주었는데, 나는 긴장하며 “선생님이 안 계셨던 것 같습니다.”라고 떨면서 대답했다.
이후 양 선생은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울기도 하고, 음악 시간에 교실에서 울기도 했다. 나는 결혼이 저렇게 싫은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양 선생은 실컷 울고 난 그다음 시간에는 꼭 애들을 많이 혼냈다. 특히 반장인 나에게 반장 역할을 못 한다면서 분풀이를 했다.
학급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나에게 반장답지 못하다는 둥, 떠드는 아이들 칠판에 이름 적지 않는다고 반장 역할 못 한다는 둥, 무슨 일만 하면 나에게 뭐라고 했다. 그리고 나 대신 우리 반에서 제일 덩치가 큰 박 군에게 반장의 역할을 맡겼다. 박 군은 공부는 못했지만, 양 선생이 반장 역할을 하라고 하니 너무 좋아했다. 나는 차라리 매일 혼나느니 조용히 공부나 하련다 하고 생각했고, 반장 역할을 빼앗긴 걸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양 선생은 거의 매일 계속 울어 댔는데, 특히 체육 시간에 모처럼 애들이 운동장에 나가서 즐겁게 놀고 있으면 갑자기 ‘차렷, 열중쉬어, 교실로 들어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적당히 포기했다. 2학기에는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학교생활을 했다.
그해 가을 결국 양 선생은 그 남자 선생과 결혼을 했고, 속도 없는 나는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선물까지 들고 말이다. 어쨌든 양 선생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형적인 지독한 우울증 환자였다. 그리고 그 증세는 어린아이들을 충분히 오염시키고도 남았다.
그녀는 학교보다 병원에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4학년 국민학생들의 행복해야 할 기억을 잿빛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