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5학년 4반, 6학년 9반 길×× 선생

― 촌지(寸志), 그 놀라운 힘

by 이상훈

5학년과 6학년의 기억은 겹친다. 그도 그럴 것이 담임선생이 같은 사람이어서. 졸업한 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솔직히 5학년과 6학년의 학교생활이나 친구들이 명확히 구분되어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냥 5학년 때가 6학년 때인 것 같고, 6학년 때가 5학년 때인 것 같다.

그럼에도 길 선생의 기억은 생생한데, 길 선생은 무엇이든 받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걸 알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길 선생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했다.


우리 엄마와 비슷한 또래의 퉁퉁한 아주머니였던 길 선생은 나에게 자기 집 은행 심부름을 많이 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길 선생은 아무한테나 심부름을 시키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옆 반 담임이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인 나를 불러 내일이 담임선생님 생일이니 아이들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 말씀은 금과옥조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내일 선생님 생일이니까 선물을 준비하라는 취지로 반에 돌아가서 말했다.


나도 집에 가서 엄마한테 선생님 생일이니까 3천 원만 달라고 했다. 5살 많은 우리 형이 무슨 담임선생 생일까지 챙기냐? 아부하냐? 이렇게 얘기했는데, 형은 원래 좀 나를 비판적으로 보는 유일한 사람이어서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저녁 늦도록 약수동 시장을 아이들과 길 선생 선물을 사러 돌아다녔다.

결국 3천 원으로는 마땅히 살 게 없어 나는 편지만 써서 길 선생에게 전달했다.


우리 반에는 경옥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학교에 경옥이 엄마나 아빠 대신 늘 할머니가 왔다. 얘는 길 선생 생일에 선물을 거창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과일도 싸 오고, 선물도 사 오고, 모처럼 길 선생은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고, 길 선생보다는 경옥이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길 선생은 너무 티 나게 경옥이를 칭찬하곤 했다. 예를 들어 음악 시간에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이 노래로 실기시험을 봤을 때 다른 애들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칭찬을 안 하다가 완전 가성으로 이상하게 부르는 경옥의 노래가 끝나자 “그래, 저렇게 불러야 되는 거야.”라며 말도 안 되는 칭찬을 했다. 그러자 경옥이 뒷번호 애들은 다들 가성으로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홀로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라고 괴기스럽게 불러 댔다.

나는 지금도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라는 노래가 너무 무섭다.


이것 말고도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작품을 만들면, 경옥이 작품은 교실 앞에 전시하게 해 주었고,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다른 애들은 청소 도구함 옆 한편에 전시하게 했다. 미술 시간은 진짜 가관이었는데, 경옥이는 지금 생각해도 추상화 같은 거를 그려 댔다. 미술 시간에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들고 교탁 앞에 서면 아이들이 작품의 장단점을 평가하곤 했었다. 말썽꾸러기 동철이는 “경옥이 그림은 걸레 같아요.” 이렇게 말해서 우리 모두를 웃겼는데, 길 선생은 저건 “경옥이 작품의 특성이야. 화가 고갱 느낌 나지 않니?”라고 변호까지 해 주었다.

그때 우리는 고갱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


그런 날들이 계속될수록 우리는 길 선생보다 경옥이를 미워했다. 심지어 길 선생이 경옥이에게 중간고사 답을 가르쳐 주었다는 소문이 교실에 퍼지기까지 했다. 이 소문은 길 선생 귀에까지 들어가 길 선생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소문의 진원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그건 누가 시작하지 않았어도 우리 반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던 상황이라 난 누가 소문을 시작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경옥이를 ‘아부쟁이’, ‘네. 네. 굽신굽신.’ 이렇게 불렀는데 눈치 빠른 경옥이는 놀리는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복도에서 옆 반 담임교사와 수다를 떨던 길 선생은 깜짝 놀라 교실로 들어왔고, 경옥이는 울면서 길 선생에게 “선생님, 애들이 자꾸 저 놀려요.”라고 하니 길 선생은 경옥이를 복도로 조용히 불러냈다.

다른 학생들은 교실에서 아무리 울면서 일러도 그 자리에서 이유를 묻고 해결하는 평소 길 선생과는 완전 달랐다. 복도에서 길 선생과 경옥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자기를 놀리던 아이들에 대한 고자질이었겠지.


앞문을 세차게 열던 길 선생은 경옥이를 한 번이라도 놀린 학생은 다 일어나라고 했다. 한 번이라도…. 남자아이들은 거의 다 일어났고, 우리는 일어난 채로 엄청 혼났다. 나는 솔직히 경옥이를 놀린 적이 거의 없었으나 ‘한 번이라도’라는 말에 한 번쯤은 놀렸겠지 하고 일어난 것이다.


5, 6학년 생활은 다소 아쉽게 끝이 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기도 했고, 유달리 나는 집보다는 밖에서 많이 놀았다. 공부도 잘해서 그런지 나는 자존감도 자존심도 하늘을 찌르는 국민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은 내 뜻대로 풀린다고 생각했고, 선생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1) 다시 만난 길×× 선생


길 선생을 내가 교사가 된 뒤 내 나이 36세에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졸업하고 23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전화 통화를 한 번 했는데, 나를 아주 또렷하게 기억했다. 나에게는 고마운 일었다. 나는 6학년 9반이었던 동창들에게 길 선생 만나러 가자고 했더니 다들 고개를 저었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도 사실 존경의 마음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길 선생은 내가 엄청 똑똑했어서 사회적으로 엄청 높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고 했다. 내가 교사가 된 것도 되게 자랑스러워해 주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길 선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길 선생의 가족관계도 잘 알고 있었다. 아들 둘이 있었고, 남편분은 교수였다. 길 선생이 강남구 개포동 쪽 아파트에서 살았던 것도 기억난다고 했더니, 길 선생은 “너는 별걸 다 기억하는구나. 넌 기억력도 좋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갑자기 나는 국민학생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철이 얘기, 삼길이 얘기 등 6학년 때 굵직굵직했던 사건들에 대해 얘기했다. 길 선생은 아직 다 기억하고 있다며, 나중에 동창회 하면 본인을 불러 달라고 했다.


나는 길 선생에게 가장 궁금한 경옥이 얘기를 물었는데, 길 선생은 경옥이 이름조차 기억도 못 했다. 경옥이 이름은 내가 알려 주니 그때서야 조금 기억이 난다고 했다.

길 선생은 자신이 특별히 예뻐했던 여자아이 정도로만 기억했다.


그리고 길 선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선생이니까 내 마음 알지? 특별히 예쁜 아이가 있잖니?” 다소 힘없어 보이는 길 선생의 말에 나는 “그럼요. 저도 선생인걸요.”라고 말했다.

오는 길에 난 다시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처럼 특별히 예쁜 아이를 만들지는 않아요. 경옥이가 예쁜 아이가 아니라 선생님이 예쁜 아이로 만드신 거잖아요.’


길 선생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아마 수많은 경옥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억이 안 나겠지. 길 선생이 나보다 경옥이를 더 기억할 줄 알았는데, 이름조차 기억 못 하다니. 경옥이가 들으면 많이 섭섭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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