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드레날린의 시대 ― 중학생들은 말하는 원숭이들
남자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교실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았다. 사춘기의 왕성한 호르몬을 뿜어내는 14세의 중학생들에게는 학교는 놀이터이자 싸움터였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는 이상한 서클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들은 ‘일군’이라고 불렸다. 내가 보기엔 그냥 양아치들이었는데, 소문에는 ○○상업고등학교 형들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일군 멤버들을 건드리는 학생들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일군 멤버들은 기세등등했다.
일군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만만한 아이들을 방과 후에 금호동 해병대산으로 불러 열나게 패 댔다.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맞고 온 아이들은 기가 푹 죽어 학교생활을 했다. 나도 조금 겁이 났지만, 나는 맞을 이유가 전혀 없어서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맞을 이유는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저녁이면 약수동이며, 장충동 등을 친구들과 돌아다니고 깔깔거리던 나는 가끔 일군 아이들을 마주치곤 했는데, 나는 걔들을 알지도 못했고 걔들도 나를 잘 알지도 못하니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저녁이면 약수동 오락실에 가거나, 독서실 앞에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부모님은 딱히 걱정 안 하셨는데, 나는 이때 공부를 진짜 안 했던 것 같다. 동대문 운동장에 놀러 가서 친구와 쇼핑도 하고, 2만 원짜리 뱅가드 구두를 여러 번 보고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때는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게 그렇게 즐거웠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찌질이 하나가 나한테 “너 어떤 형이 운동장으로 오래.”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친형이 학교에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창밖을 보니 일군과 연결된 ○○상업고등학교 형들이었다.
‘오 마이 갓! 왜 나를.’ 나는 맞기 싫어서 운동장을 거치지 않고 학교 후문으로 몰래 도망갔다.
집에 가면서 자꾸 뒤돌아보았는데, 다행히 그 형들은 없었다. 집에 가서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기 싫었다. 분명 그 형들이 날 기다릴 테니까 말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갔다. 이럴 땐 어떤 친구들도 도움이 안 되었다. 말해 봐야 도와줄 수 없으니 말이다. 오늘은 그 형들이 우리 교실 앞까지 와서 나를 잡아갈 것만 같았다.
그날 3교시였다.
우리 학교짱 장희가 선생님들 회의 간 사이에 일군들한테 집단으로 린치를 당하고 있었다. 권투까지 배운 장희가 일군들에게 무참히 맞으며 도망 다녔다. 3층 교실에서 맞기 시작하여, 2층 우리 교실까지 도망 왔다. 일군들 중에는 6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삼길이도 끼어 있었다. 우리 반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장희가 맞는 걸 조용히 모두 목격하고 있었다. 장희는 교실에서 복도로 도망갔는데, 복도에서도 장희는 여전히 터지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우리 반 부반장 석영이가 책상에 올라가 창문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때 일군 멤버 삼길이가 석영이를 보고, 교실로 들어와서 석영이를 패기 시작했다. 뭘 보냐며 머리를 손으로 때리고 발로 복부를 찼다. 착한 석영이는 처음에는 맞다가 갑자기 돌변해 삼길이를 패는 것이다. 석영이가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지 몰랐다. 석영이는 삼길이를 엄청 팼고, 나중에 일군들은 석영이와 삼길이를 떼어 놓았다. 일군들이 석영이는 때리지 않았는데, 그건 석영이가 학교에서 알아주는 공부 천재였고, 친구 관계도 좋아서였던 것 같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다들 흩어졌는데, 머리를 많이 맞은 석영이는 담임선생이 들어와도 엎드려 있었다.
담임선생은 석영이 아프냐고 물었으나 우리 반에서 석영이의 상황을 대답해 주는 용기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도 생각 없는 부반장 성조가 앞에 나가 담임선생에게 모든 상황을 말했다. 담임의 작은 눈은 점점 커지더니 갑자기 교무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오늘 방과 후에 장희만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가고 싶었다. 담임선생은 점심시간이 다 끝나서야 교실로 와서 “일군과 관련 있는 새끼들은 다 일어나라.”라고 했으나 우리 반 일군 조무래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담임은 갑자기 또 어딜 다녀왔다. 잠시 후 방송에서 일군들에 대한 무기명 조사를 한다는 내용이 흘러 나왔다. 아이들은 일군들의 이름을 종이 적어 담임에게 냈다.
그날로 일군은 일망타진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그 후 방과 후에 나를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