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해할 수 없는 선생들

by 이상훈

교사는 어떻게 되는가? 일반적으로 사범대학교나 교육대학원 졸업 후 사립학교는 학교의 채용 절차에 따라서 공정하게 선발하면 되고, 공립학교야 당연히 시험을 통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일정한 절차들을 거쳐 교사가 되는데, 왜 내가 겪은 학교들은 그 어떤 채용 절차도 안 거친 듯한 선생들만 바글바글했는지 모르겠다.


(1) 군인 출신 교련 선생

진짜 깡패는 오히려 학교에 있었다.


교련, 이제는 옛날얘기가 되었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일주일에 2번 정도는 교련 수업이 있었다. 교련 선생은 군인 출신이었다. 군인도 교사가 되는가? 아무튼 교련 선생은 이름도 특이했다. ‘○종대’ 횡대, 종대 할 때 종대다. 이름 자체가 군인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군인은 군대에 있어야 했다. 왜 학교로 와서 학교를 군대로 만들려고 하는지…. 정말 미치겠다. 이제 10대 후반의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아이들에게 왜 군대 생활을 학교생활로 이입시키려는지 모르겠다.

교련 선생은 가끔 군복을 입고 학교에 왔다. 선글라스에 지휘봉. 진짜 지금 생각하면 웃긴 얘기지만, 그때는 그런 선생들이 많이 있었다.


추석 전날 대청소를 하던 날이 난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대청소 날에는 항상 유리창 청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청소이다. 그런데 남학생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유리창을 닦을 손걸레가 있을 리 만무하다. 걸레 같은 걸 찾다가 교탁 아래에 있는 누군가 버리고 간 오래된 교련복이 보여서 너도나도 나누어 가지고 우리는 복도의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유리창 턱에 앉아 조금은 위험하게 닦고 있을 무렵 그 군 출신 교련 선생이 지나갔다.

교련 선생은 다 내려오라고 하며 한 줄로 자기를 바라보고 똑바로 서라고 했다. 나는 위험하니까 내려오라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고마워하려고 할 찰나에 앞쪽부터 따귀를 때리면서 오는 미친 교련 선생을 보고 말았다.

맨 끝에 서 있던 나는 ‘왜 맞아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세게 맞기 싫어서 교련 선생의 손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다른 애들보다는 덜 아프게 맞은 것 같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빗맞았다는 이유로 한 대 더 세게 맞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우리들에게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배어 나오는 한마디를 하며 그는 사라졌다.

“이놈의 새끼들, 제복으로 말이야. 유리를 닦아?”

그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웃었다. 당신이 말한 그 제복이 당신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선배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나는 속으로 ‘오늘은 당신도 쓰레기 제복 같았어.’라고 생각했다.

(2) 사시(그때는 ‘사팔뜨기’라고 불렀음) 국어 선생

내가 다닌 학교는 서울하고도 중구 즉 서울의 중심. 우리 집에서는 종로 16분, 신촌 30분, 강남 20분, 명동 16분이 걸릴 정도로 정말 좋은 동네다. 난 지금도 우리 동네 장충동을 사랑한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지만. 가끔 본가 서울에 갈 때면 나도 아이가 되어 간다.

그런 좋은 동네 한복판에 있는 우리 학교의 선생들은 다들 왜 그런지. 신이 일부러 나에게 이런 선생들만 만나게 한 것 같다. 물론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그 선생들처럼 되지 않기 위한 것이 가장 컸기에 가끔 신에게 고맙기도 하다.

사팔뜨기 국어 선생은 정년을 앞둔 것처럼 늙었다. 그는 특히 중세국어를 엄청 열정적으로 가르쳤는데, 중세국어는 모의고사에 잘 안 나오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국어 시간은 아무도 듣지 않고 자거나, 떠들거나, 아니면 다른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었다.

사팔뜨기 국어 선생은 학생들에게 국어 자습서를 반드시 사라고 했는데, 지학사를 사라고 했다. 한샘 국어는 주방용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지껄였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지학사 자습서를 거의 매 수업 시간마다 검사했는데, 고등학생들이 선생님이 사라고 해서 다 사지는 않는 분위기라 다들 빌리러 다녔다.

그런데 매일 검사를 하니 빌리는 것도 일이었는데, 번호대로 검사할 때 앞번호 학생이 검사를 맡고 뒷번호 학생한테 넘겨도 이 선생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국어 선생의 검사라는 것은 문제 풀이를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책에 형광펜으로 칠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무슨 색칠 공부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형광펜을 많이 써 대서 손이 다 형광색으로 변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사팔뜨기 선생을 너무 무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그 선생이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들어와도 아이들은 계속 떠들었고, 한 20분간 떠들다가 선생님이 “이제 다 떠들었냐?”라고 우리에게 물으면 짓궂은 놈들은 “아니요. 좀만 더요.”라고 응대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학생들은 이런 사팔뜨기 국어 선생을 존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 국어 선생을 학생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날이 있긴 했다. 그날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이다.

왜냐하면 이 국어 선생이 사시여서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 수 없어 학생들은 절대 커닝(cunning)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국어 선생의 목소리는 엄청 컸는데, 시험 보다가 갑자기 “야 너 나와!”라고 소리치면, 엉뚱한 녀석이 일어나서 나가려 했는데, 그때마다 이 선생은 “너 말고, 너!” 이렇게 외쳐 시험 보는 교실을 카오스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 선생이 눈으로 가리키는 학생과 진짜 나오라고 한 학생이 일치하지 않아서, 우리는 시험 시간에 이 사팔뜨기 선생이 제일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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