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해할 수 없는 선생들

by 이상훈

(3) 양아치를 사랑한 척한 진짜 양아치 선생

1학년 때 영어 선생은 좋은 담임인 척을 잘했다. 특히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나 양아치 같은 아이들에게 엄청 잘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차별을 받는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선생은 학생들을 되게 위하는 척했다.


갑자기 일요일에 도봉산 가자는 둥 진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였는데, 처음에 나는 담임의 그런 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날 한 녀석이 성인비디오 테이프를 학교로 가져왔는데, 갑자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종례 때 담임선생이 가방 검사를 해서 녀석이 이 비디오테이프를 숨기지 못하고 걸렸다. 담임은 무슨 비디오냐 물었는데, 녀석은 “외국영환데요. 그냥 외국영화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담임이 계속 물었을 때도 녀석은 “외국영화요. 저도 아직 안 봤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때 녀석이 조금만 덜 반항적이었어도, 담임이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화가 난 담임은 “그래. 그럼 다 기다려. 가지 말고 기다려.”라며 교무실로 그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갔다. 교무실에는 비디오 비전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야간자율학습 감독 교사가 교무실에서 뉴스나 드라마 등을 보는 용도였다. 담임은 그 테이프를 들고 교무실에 가서 틀었나 보다. 담임은 교무실 간 지 1분도 안 되어서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우리의 예상대로 그 테이프는 포르노 비디오였다. 담임은 그 테이프를 들고 교실로 와서 이 테이프와 연관된 새끼들은 다 남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교무실로 가 버렸다.


우리들은 엄청 웃어 댔다. 양아치 몇 명만 남고 다들 집으로 갔다. 그다음부터 담임은 뭐가 삐쳤는지 조회와 종례를 들어오지 않았으며, 양아치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무실에서 벌을 섰다.

처음에 우리는 조회, 종례를 안 하는 게 불안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즐겼다. 8교시가 끝나면 종례 없이 튀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담임이 하루는 교무실에서 커다란 몽둥이로 양아치들의 엉덩이를 때리다가 갑자기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쳤다. 나를 때려라.”라는 드라마와 같은 말을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다. 드라마에는 드라마로 답해 줘야 한다. 이때 연기력 좋은 양아치 하나가 “선생님 아닙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선생님에게 안기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40대 중반에 양아치만을 사랑했던 그 담임은 결국 자기가 이긴 것처럼 자기가 진정한 교사인 것처럼 굴었지만, 우리는 사실 담임선생 머리 꼭대기에서 앉아 있었다.


(4) 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문학 선생이 담임이었다. 이 문학 선생은 약간 투박했지만, 지금 본 담임 중 가장 공정했고, 선생님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문학 과목에 두각을 나타내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담임은 날 되게 예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형이 5년 전에 졸업했는데, 형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인간적이었다. 문학 선생님은 덩치도 크고, 키도 커서 되게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1학년 때 담임처럼 양아치만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을 잘 이끌어 주었다. 난 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고마웠다.


우리 학교에는 특별반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각 반 학생들 중 우수한 학생들만 특별반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잘 했지만 특별반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특별반 학생들은 돈을 따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더 내야만 했는데 나는 그 돈을 부모님에게 내 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특별반 학생들은 학교에서 정말 특별 대우를 받았다. 저녁에 외부 강사가 학교로 와서 과외도 해 주었고, 주말에는 그 학생들을 위한 학원도 따로 있었다.


나는 이 당시 완전히 수학을 포기했었다. 수학을 왜 배우는 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쓸데없이 미분이니 적분이니 왜 멀쩡한 걸 쪼개고 붙이나? 확률이야 가위바위보 확률이나 주사위 확률만 알면 되었지 왜 모든 걸 확률에 맡기나?


그런데 그때는 문과라도 수학을 해야 했고, 과목마다 단위 수가 있어서 수학을 못 보면 전체 등수가 쭈욱 밀렸다. 나는 단위 수를 곱하지 않았을 때는 수학 빼고 거의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아서 최상위권이었는데, 수학 단위 수만 들어가면 점점 등수가 뒤로 갔다. 4단위의 수학을 곱하면 전체 등수가 뚜욱 떨어졌다. 그런 내게 담임은 수학만 올리면 되니까 특별반에 들어가라고 권유했다. 나도 특별반에서 수학이나 배울까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돈도 너무 큰 돈이었고 그때는 국어가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재미없는 수학을 하느니 그 시간에 책이나 더 읽고, 일기나 한 장 더 쓰자는 주의였다.

늦가을로 기억된다.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나는 날 학교에 웬 방송국 카메라가 왔다. 여기저기 찍고, 우리 반 부반장도 인터뷰를 했다. 교장선생님도 약간 떨떠름하게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교장선생님의 당시 별명은 ‘찌빠’였는데, 목 디스크가 있으셔서 뒤로 돌아보려면 몸을 전체 돌려야 해서 아이들이 교장이 마치 로봇 같다고 해서 ‘찌빠’라고 불렀다. 찌빠라는 게 무슨 만화의 로봇 캐릭터였던 것 같다. 아무튼 고등학교 남자 녀석들은 참 창의적이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가 뒤숭숭했다.

알고 보니 특별반 학생들이 다닌 학원에 무자격자 강사들이 많았고, 거기 원장이 우리 학교 선생들에게 돈을 줬다는 뉴스가 그날 저녁에 나왔다.

그날 저녁 9시 뉴스에 바로 우리 학교가 나왔고, 철없는 나는 그걸 비디오로 녹화했다. 그리고 애들끼리 돌려보았다.

뉴스는 재방송이 없으니까. (인터넷으로 다시보기 하면 되지 않냐고? 1992년에 우리나라는 천리안, 나우누리 시절이었다. 핸드폰은 SF 영화에서나 보던 때였으니까.)


다음 날 담임은 조회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예 출근도 하지 않았다. 며칠 지나 오후 문학 시간에 잠깐 들어왔는데,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후 담임은 계속 출근하지 않았고, 대신 나이 든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영어 선생님은 담임이 사정상 몇 달 못 나온다고 했다. 담임이 브로커였던 것이다.

담임 말고는 다른 교사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술 선생은 수업 시간에 기술실에서 바둑을 두었고, 과학 선생은 여전히 애들을 팼다. 체육 선생은 공만 줬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학교를 다녔다. 결국 담임은 3개월 후에 돌아왔는데, 이후 당당했던 담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멍청한 양반, 차라리 독일어 선생처럼 개인 과외를 하지. 왜 그런 일을 해서 뉴스에도 나오고, 징계도 받고….

2학년을 마칠 때 담임선생은 다시 돌아왔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수업 시간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남자 고등학생들인 우리의 감수성으로 선생님의 그 말에 어떤 감정을 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학창 시절은 끝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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