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3

by 이상훈

(2) 다시 시작하기

아무래도 자료가 너무 없다.

박물관 안에 들어갈 자료가 이렇게 없는데 어떻게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가정관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되었고, 2층에는 박물관이 이미 터를 잡아 가고 있었다. 인테리어는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이 있었으나, 인테리어 업자가 몇 번 바뀌면서 내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우리 집도 아닌데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밤마다 박물관 공사 현장을 체크했다.


천장 공사가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천장의 나무 구조가 멋지다는 이유도 천장의 공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비용도 절감되고 좋은 일인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자료를 모으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4년, 1학년 담임이라서 엄청 바빠지고 있는데,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교장 신부님과 여러 선생님(당시 개축 위원회)들에게 박물관 진행 상황을 브리핑해야 했다. 내가 하는 브리핑이라는 것은 박물관 자료 수집과 가정관의 의견 정도만 어필하는 것인데, 내가 전문가도 아니어서 거의 아무 말 대잔치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학교의 개축위원 한 분과 함께 박물관과 도서관이 잘되어 있는 학교로 출장을 갔다. 처음에 간 곳은 중앙대학교 부속 고등학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곳은 전국 학교 도서관 중에서도 최고로 꼽힐 만큼 대단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가 보니 역시 달랐다. 입구부터가 학생을 위한 공간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작은 영화 관람 공간, 테라스 앞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깨끗한 사서실 등 정말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그대로 우리 학교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앙대 부속 고등학교를 나와서 숙명여고로 향했다. 숙명여고는 건물부터가 바로크 양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크 양식을 정확히 모르겠으나 대충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전적인 냄새가 풍겼고, 도서관에 들어서니 학생들이 어찌나 많은지…. ‘진짜 이게 고등학교 도서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시험 기간의 대학 도서관 같았다. 특히 이 도서관에서 놀라운 점은 온돌 휴식처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여기에 누워서 책을 읽기도 하고, 쉬기도 했다.

‘역시 다르긴 다르군.’ 하고 생각하며 꼭대기 층으로 사서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는 박물관이 있었다.

숙명여고의 박물관은 무슨 국립박물관이라고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몇 개월 동안 모아 놓은 자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자료들로 넘쳐났다. 몇 개는 좀 빌려 가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갑자기 내가 모아 놓은 것은 폐기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박물관 자료는 다시 모아야 한다.’라고 다짐하며 숙명여고를 빠져나왔다. 함께 간 선생님과 숙명여고 앞에서 차 한 잔을 마셨다. 숙명여고의 고전적 향기가 차에서 계속 묻어 나왔다.


학교에 돌아왔어도 중앙대 부속 고등학교와 숙명여고의 분위기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모아 놓은 자료가 있는 교실로 갔다. 거기 가서 내가 폐기물처럼 느껴졌던 자료들을 하나둘 읽기 시작했다. 사진부터 생활기록부, 트로피 등 계속 보고 또 보았지만, 이걸로는 안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세 시간 정도 읽다 보니 밤이 되었고, 나름 고전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긴 했다. 그러나 나의 재미가 박물관 전시로 연결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9시 정도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낡은 먼지 속에 있다 보니 물 한 잔이 너무 먹고 싶었다. 교무실로 내려가 물 한 잔 먹고 다시 올라왔다.

자료를 쭉 둘러보는 순간 저쪽에 끈으로 묶여진 앨범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이나 보자는 생각에 앨범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그 속에는 젊은 열정에 가득 찬 선배 선생님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당시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의 모습에 더 눈이 갔다. 옛날 양복이 촌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들의 눈에서는 왠지 모를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 이거야. 이 사람들을 찾아보자. 이 사람들은 뭔가를 가지고 있을 거야. 적어도 지금 모은 자료보다는 더 좋은 게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퇴근을 했다. 창고를 나오면서 내일 당장 이들을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새벽 여전히 수영장이 아닌 박물관에서 나는 헤엄을 치고 있었다. 박물관, 박물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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