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4

by 이상훈

(3) 우편물


아침 일찍 출근하여 행정실로 갔다. 나는 행정실장에게 퇴직 교사 명단과 주소를 달라고 했다. 나는 퇴직 교사들에게 편지를 써서 박물관 자료를 받으려고 계획했다. 그래서 아침에 가자마자 교장 신부님께 퇴직 교사들에게 교장 신부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 달라고 했다.

교장 신부님께서는 내가 요청한 대로 편지를 잘 써 주셨고, 나는 그 편지를 하나하나 부쳤다. 교장 신부님은 국어 교사인 내가 보기에도 필력이 매우 좋았고, 문장의 구성력도 완벽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지적으로 잘 풀어 주셨다.

그 편지가 퇴직 교사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랐으나 대부분은 주소 불명으로 반송되었다. 그도 그럴 것인 1953년에 개교했고, 60년 가까이 되는 학교의 그 교사들이 퇴직하면서 남긴 주소에 지금까지 그분들이 사는 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사망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반송되는 편지들을 보면서, 박물관은 더 이상 진전이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 이건 원래 내가 맡을 일이 아니었어. 박물관,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한 것도 대견해.’ 자기합리화에 빠져 있을 때쯤 교감선생님이 나를 찾으셨다.

“이게 학교 앞으로 왔네.”

“네, 이게 뭐죠?”


열어 보자마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53년에 임용된 교사의 임용장 및 고등학교 발령장 등 적어도 50여 년이 넘은 종이들이 어제의 종이처럼 반듯하게 말려 있었다. 또 1950년대의 학교의 사진 등의 다양한 자료들이 그 봉투 안에 다 담겨 있었다.

“박대용? 이분이 누구시죠?” 나는 갑작스럽게 이분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막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아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퇴직 교사는 김○○ 교장 선생님 정도였다. 이분은 매년 졸업식에 90이 넘는 연세에도 학교에 오시니 내가 기억을 안 할 수 없는 분이다. 이분에게는 이미 몇 개의 자료를 받아서 잘 알고 있지만, ‘박대용’이라는 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분이 보낸 서류와 상패 사이에 몇 장의 사진이 있었다. 젊은 날의 사진부터 최근의 사진까지 청년의 모습에서 노인의 모습이 누런 봉투 안에 다 담겨 있었다.


박대용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난 어떤 분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분은 우리 학교 개교 기념사진(1953년 5월 21일 사진) 중앙에 등장하는 분이셨다.

드디어 풀려 가는구나. 이분 자료로 전시관 한 칸은 족히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드디어 되었어. 미션 성공이구나.’

이제 자료만 잘 정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박대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왜 이분은 왜 자료를 왜 학교에 왜 보냈을까? 연락처는 나와 있지 않았다. 주소를 보니 ○○군에 있는 아파트였다. 검색해 보니 다행히도 관리실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희망고등학교입니다. 혹시 ○○○동 ○○○호 사시는 박대용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여기는 관리실이라 통화는 안 됩니다.” 매우 불친절했다.

“아, 그럼 연락처 전달 부탁드립니다. 희망고등학교 개축 위원회 박물관 담당(그럴싸해 보인다) 교사 이상훈입니다. 희망고등학교로 연락 바란다고요. 전달 부탁드립니다.”

“네.” 전달이나 할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관리소 직원이 불친절한가? 진짜 짜증이 났지만, 괜히 짜증 냈다가 연락이 불가능할까 봐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일주일이 흘렀다.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했다. 학교 번호보다는 내 핸드폰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전히 불친절하다. “그 집에 사람이 없어요.”

“아, 네. 혹시 연락 닿으시면 핸드폰으로 연락 바랍니다.”

내가 그 집을 찾아가고 싶었으나 안 계시다고 하니 뭐 가 봤자가 아닐까?

또 며칠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분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 했는지는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이미 우편으로 자료를 다 받았는데 말이다.

“네, 박물관 위원회요? 그런 곳 아닙니다.” 어떤 선생님이 박대용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다. 박대용 선생님이 학교에 직접 전화를 하셨는데, 뜬금없이 박물관 어쩌고저쩌고 하니 알 수가 있나? 게다가 90이 가까운 노인의 목소리라는 것이 잘 들릴 리가 있겠나? 다른 선생님들은 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니 말이다. 통화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그러나 아주 우연하게 박대용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었다. 행정실로 전화가 왔고, 나를 찾았나 보다. 다행히 박 선생님은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 거고, 박물관에 대한 기대를 말씀해 주셨다. 목소리는 잘 안 들렸지만,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서 일종의 기대 따위가 나에게 전달되었다.

2015년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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