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2

by 이상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장 신부님과 교감선생님의 얘기를 상기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박물관 총책임자가 나로 정해졌고, 난 또 어쩌자고 할 수 있다고 한 걸까?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오늘부터는 아침 수영을 한다. 물이 차가웠지만, 그런대로 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물속에서 힘들게 팔을 휘저을 때도 그 말들이 떠올랐다. 아침 수영의 가장 큰 장점은 물과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물아(我)일(一)체(體) 아닌가? 아침 수영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적어도 수영하는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이제는 그 일도 글러 먹어 버렸다. 매일 아침 난 수영장이 아닌 ‘박물관’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1) 박물관? 그걸 어떻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일단 나는 학교의 수많은 창고부터 뒤졌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이 약간 있었다. 각종 트로피와 메달, 상장, 과학 실험 기구, 레코드판, 카세트 등 여러 가지 물품들이 창고에 쌓여 있었다. 심지어 광복 몇 주년 기념 태극기와 국기함까지 찾아냈다.


‘뭐야, 이거 너무 쉽잖아. 이것들을 깨끗이 닦아서 대충 전시해야겠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일이 풀려 나갔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물품들이 너무 오래되었고, 양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이 자료들은 들자마자 찢어져 버렸다.


나는 매주 금요일 창고를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물관 도우미로 야자하는 학생들 중 6명의 학생들을 뽑았다. 애들은 애들이다. 자습실에서 머리 싸매고 있느니 창고를 뒤지는 것을 더 좋아하니 말이다. 우리의 작업은 특성상 주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이루어졌고, 그래서 그런지 창고의 습한 기운이 밤기운과 함께 늘 우리를 덮어 주었다.


창고는 물품보다 먼지가 많았고, 쓸데있는 것보다 쓸데없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창고에서의 물건은 대부분 쓰레기장으로 직행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박물관 물품 수집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창고 정리를 하는 것인지 여러 차례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석 달 정도가 지났다. 학교 창고는 뒤질 대로 뒤져서 더 뒤졌다가는 내가 뒤질 지경이었다. 여름에 시작했던 일이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었고, 나도 학교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것도 없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었다. 자료 정리는 다 되었으나 괜찮은 것은 30여 점이고 나머지는 별로 의미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박물관 자료를 수집하는 걸 이 학교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3월에 박물관 담당이 나라는 얘기만 교직원 회의 때 교감선생님께서 잠깐 언급했을 뿐이었다.

나에게 박물관 자료를 주는 사람도 나한테 수고한다고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더 편했다. 사람들이 ‘박물관’이라는 단어마저 잊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박물관’ 자료 정리하면서 한국창의재단에 ‘박물관’ 관련 예산을 받기 위해 계획서 비슷한 걸 제출했다가 2차 면접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데, 그 일로 나는 ‘박물관’ 자료 수집 작업에 대한 의욕이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업무에 바빠서 그런지 한동안 박물관을 지우고 있었다.

가끔 교장 신부님과 교감선생님이 잘되어 가냐고 묻긴 하셨지만, 독촉이라기보다 격려라는 것이 느껴졌고, 본인들도 이 일이 될 거라고는 믿지 않으시는 듯했다. 내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자료 찾다가 끝나도 될 거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13년이 끝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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