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줄을 끊는 시간
새벽에는 아무도 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전화도 오지 않습니다. 카카오톡도 울리지 않습니다. 메신저나 메일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 고요 속에서 저는 온전히 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새벽 시간은 어떻게 보면 어차피 없는 시간입니다.
다들 잠을 자고 있을 테니 저에게만 주어진 보너스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없는 시간에 잠을 자든, 책을 보든, 음악을 듣든, 그냥 멍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든, 그것은 저의 자유입니다. 제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또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자유로움이 좋습니다.
낮에는 남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제 시간이 남들의 시간과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들의 상당 부분은 제가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또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수행해야 합니다.
분명 저에게 주어진 제 삶의 시간들인데, 저는 그 시간을 통제하거나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도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정한 시간에 나가고 들어와야 합니다.
분명 제 시간임에도 하루의 대부분은 제가 아니라 회사나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통제합니다.
주말 오전, 집안 청소를 해야 합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마시며 청소 순서를 정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2시간 후 깨끗해진 집을 보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다릅니다.
아내가 "오늘 청소 좀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해서 마지못해 청소를 시작합니다.
사실 오늘은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같은 2시간을 청소했지만, 끝나고 나서도 찝찝하고 불만이 남습니다.
같은 활동입니다. 같은 결과입니다. 깨끗한 집이라는 결과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처럼 사람은 스스로 자기 통제하에 시간을 계획하고 사용할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누군가에 의해 시간을 사용하게 되면, 같은 일을 해도 불만이 남습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L'homme est condamné à être libre)
인간은 어떤 정해진 본질이나 목적 없이 태어났기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데 꼭두각시처럼 선택당하고 움직인다면, 이 자체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은 제 몸에 붙어 있는 꼭두각시 줄을 끊어버리는 시간입니다.
24시간 중 2~3시간뿐이지만, 그 줄을 끊고 온전히 제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립니다.
내가 온전히 내 시간을 통제하고 있음을 느끼는 자유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만큼은 제가 저 자신의 주인입니다.
회사도, 상사도, 동료도, 가족도 제시간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오롯이 제가 선택합니다.
책을 읽을지, 글을 쓸지, 명상을 할지, 운동을 할지, 그냥 창밖을 바라볼지. 모두 제 선택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어납니다.
이 자유가 좋아서 오늘도 새벽에 일어납니다.
힘들고 피곤해도 일어납니다. 이불이 따뜻해도 일어납니다. 밖이 추워도 일어납니다.
이 시간만큼은 제가 저 자신을 통제합니다. 이 시간만큼은 제 삶의 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느낌이 하루를 지탱하게 합니다.
낮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더라도, 아침에 느낀 그 자유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나였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기억이 나를 지켜줍니다.
내일도 아마 새벽에 일어날 것입니다.
자유가 좋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