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비행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그리고 죄송했던 순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by 라즈베리맛젤리

중동 승무원이 된 평범한 ‘나’라는 사람





# 최악의 실수



어느덧 나는 3년을 꽉채워가고 있었다. 정말로 이코노미 클래스의 시조새가 되었다.

막 비행하기 시작한 병아리주니어들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아직도 여기서 일해?’

왜 아직 진급이 되지 않았냐는 뜻이다..

나는 비행마다 지치지 않고 설명해줬다.


이코노미에서 오래있으면서 좋았던 점은,

이코노미에 막 들어와서 적응을 하는 주니어크루들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 있다는 점 이였다.

그 얼굴이 사실 나는 너무 귀여웠다.

어느 순간 무표정으로 브리핑 룸을 들어가던게 당연하던 나에게, 파릇파릇한 주니어들은 꽤나 신선했다.

그리고 손님들의 컴플레인을 정말로 표정 하나하나로 공감해주고 있는 걸 볼 때 면, 너무너무 귀여웠다.

이때 나는 이코노미 시조새로 적응해나가는 중이었나 보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을까?

회사에서 진급날짜가 잡힌 다음 달 스케줄을 선물해줬다. 걱정과 반가움이 적절하게 섞여있었다.

지금 이코노미의 시니어가 너무 익숙해져서 편한데, 다시 비즈니스의 주니어가 되야하다니.

아주 살짝은 달갑지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달갑진 않았지만,

어쨌든 나왔으니 올라가봐야하지 않을까?


‘이대로만 비행하면 이번달말은 진급이겠구나.’


나는 인천비행을 3년차부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인천비행보다는 오프에 한국 가는걸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어찌됬든 인천비행은 밤비행이기 때문에 고요하고도 심심했다.

우리는 대략 30분쯤마다 캐빈에 음료서비스를 나가는데, 이것은 깨어있는 손님들에게 음료를 제공하기위해 음료 쟁반을 들고 캐빈을 한바퀴 돌고 오는 것이다.


이때 나는 크류들과의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러다 음료서비스를 하러 나갔다와야했다.

뭐가그리 급했는지. 아니면 모두가 잠들었기에 그 누구도 마시지않을걸 알았기 때문인지.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갔다가는 다시 돌아오기위해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대체..뭐가그리 급했을가.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쟁반위에 컵들은 또르르 굴러서 한 손님 머리로 떨어졌다.

주스로 가득찬 12개의 컵 중 3개가 차례대로 손님의 머리로 달려들었다.

그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눈동자였다..

주무시고 계시던 승객은 주스를 뚝뚝 흘리면서 자리에서 눈을 뜨셨다. 생각나는건 휴지밖에없었다. 재빨리 화장실에가서는 한뭉텅이의 휴지를 빼와서는 손에 건내드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화장실로 바로 안내해드릴께요!’



화장실에 들어간 승객분은 좀처럼 나오시질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더많은 휴지를 손에쥐고는 화장실앞에서 기다렸다. 왠지 이것가지고는 안될 것 같았다.

재빠르게 비즈니스클래스에 남은 파자마를 한 개 얻어와서는

휴지와 함께 꼬옥 끌어안고서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몇분 후 승객분은 조용히 나오셨다.



"물인줄 알았는데, 주스네요.."



나즈막히 이 한마디만 하시고는 자리앞으로 걸어가셨다.

나라면 이건 너무 화날법한데. 화를 안내셨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왜 화를 안내시지.....? "


자리가 너무많이 젖어서,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겨드렸다. 나는 이 상황이 이상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말씀도 없으셨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본인이 10시간의 밤 비행에서 곤히 자다가 주스3컵이 머리위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어땠을가.

나라면 가만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비행을 마치고나서 나는 절대 진급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컴플레인이 들어와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라면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달 진급이 되었다. 한마디로 이 승객분은 아무런 컴플레인을 회사에 보내지 않으셨다.



사실 이때 진급이 되지 못했더라도 나는 할말이 없다. 너무나도 큰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치 이해한다는 느낌으로 아무 말 없이 내리신 이 승객분께 지금까지도 나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승객을 다시 만난다면 정말로 죄송했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이일은 내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최악의 실수이다.

비행을 하는 동안 이렇게 손님에게 죄송하고 또 죄송한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 ..



그리고 나는 이일을 계기로,

나 또한 다른사람의 실수를 한번은 너그러이 넘겨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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