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돌이켜보면, 막상 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아무 항공사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항공사마다의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전 항공사는 일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회사였다.
그만큼 일의 양이 많은 것은 당연했고, 그 당연함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회사가 크류를 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배려를 많이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 항공사의 분위기는, 정말로 크류들을 위한다는 느낌이 컸다.
정작 오래도록 일하고 있는 시니어들은 그 사실이 당연한 듯 보였지만, 내 눈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전 항공사에서는 비행을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느낌이 컸다면,
이곳에서는 나의 삶이 더욱더 중요한 느낌이었다. 회사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나름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비행하는 곳도 있구나..’하며.
일 중심적으로 일했던 것이 나에게 많이 익숙해졌던 탓인지.
나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이 너무 과분하면서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곳에서의 비행은 내 인생에 조미료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인, 하지만 넣으면 더 맛있는 그런 조미료.
하지만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분위기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하지만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조금은 필요했던 것 같다.
이렇게 여유로운 회사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의 모든 의욕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말 모든 의욕들이.
나가서 놀고 싶지도 않았으며, 쇼핑하고 싶지도, 요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것에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예전에는 분명, 무언가가 하고 싶다거나.. 적어도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의욕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의미 없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이 그립거나 하진 않았다.
홍콩에서의 주어진 나의 보금자리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끔 침대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다 재미가 없지..?’
다른 동기들을 보면, 맛있는것 먹으러도 나가고, 손톱도 하고 속눈썹도 연장하고
운동도 하면서, 이 시간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아무런 흥미가 없을까..?
사실 이 모든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이 감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항상 내 인생에 후회 없이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왜 나는 이렇게 재미없는 일상을 사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무엇을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