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 아이의 감각 (2)
모든 사람들은 일곱 개의 감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청각,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수용 감각, 전정감각) 그런데 뇌가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 특정 감각에 대하여 과소반응하거나 과민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감각처리장애(Sensory Processing Disorder)라고 한다.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있는 아이들은 SPD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아이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발생시킨다. 이번 장에서는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감각이 너무 예민하거나 둔한 경우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아이의 편안한 일상을 위해 양육자는 어떤 점을 도와주면 좋을지 앨리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청각
앨리스는 중증도 난청이 있지만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일상적인 소음은 들을 수 있다. 청소기 소음이나 믹서기 소음과 같이 다소 큰 생활 소음도 잘 견디는 편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큰 소음(공사장 드릴 소리, 고함, 비명, 아이 울음소리 등)이 발생한 경우에는 돌발행동을 한다. 소음을 내는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 대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공격 행동을 하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는 그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한다.
시각
앨리스는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시각적으로 예민하다. 일상적인 환경에서 변화가 생긴 경우 그 변화를 매우 정확하게 감지한다. 사실 시각적으로 예민한 것 그 자체가 불편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앨리스가 벌레나 세균으로 오인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점을 발견한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치워줄 때까지 비명을 지를 때가 많다.
촉각
앨리스는 촉각이 예민하며 특히 발바닥에 모래가 닿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앨리스는 바닷가에 가면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도 모래사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안아서 모래사장으로 들어가더라도 (혹시라도 모래 위에 내려놓을까) 비명을 지르며 운다. (단, 모래 놀이용으로 제작된 부드러운 모래는 만지거나 밟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입으로 물건의 촉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좋아해서 구강기가 한참 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만 5세인 최근까지도 입으로 물건을 탐색한 적이 있다.
수용감각 (고유수용성 감각)
수용감각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몸을 인지하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앨리스는 수용 감각이 또래에 비해 매우 둔한 편이다. 그래서 또래들은 쉽게 할 수 있는 특정 행동들을 앨리스는 수개월 간 연습 끝에 겨우 할 수 있었다. (사다리 잡고 내려가기, 자전거 핸들을 원하는 만큼 꺾기, 자전거 페달을 앞으로 굴리기 등) 또한 평소에는 힘이 없어 늘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일 때는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과 일부러 충돌하기도 하고 발에 힘을 주어 쿵쾅쿵쾅 걸을 때가 많다.
전정감각
전정감각은 우리 몸의 균형과 움직임에 관련된 감각이다. 앨리스는 전정감각이 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한발 서기를 만 5세인 지금도 1초 이상은 하지 못하며 밸런스 바이크나 스케이트도 탈 수 없다. 유치원의 체육 활동 시간에는 또래들은 다 할 수 있는 균형 잡기 동작을 하지 못해 집에 와서 속상해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앨리스가 전정감각에 과소반응을 하는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바이킹이나 청룡열차와 같은 무서운 놀이기구들을 나보다도 잘 타는 편이다. (앨리스와 둘이서 함께 레고랜드에서 드래곤코스터를 탔는데 열차 운행이 끝난 후 나는 반죽음 상태가 되었지만 앨리스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고 나를 위로해 주었던 일이 있었다.)
감각통합치료는 필수일까?
앨리스와 같이 뇌에서 감각 자극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감각통합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감각통합치료는 우리의 뇌가 감각 정보를 적절하게 처리하고 통합하여 몸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각통합치료의 이러한 효과가 잘 알려져서인지 나에게 치료 계획 상담을 요청했던 대부분의 양육자들은 이미 감각통합치료를 아이에게 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감각통합치료는 자폐 성향을 가진 모든 아이들에게 필수적인 치료일까?
사실 자폐 성향을 떠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감각적인 이상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감각통합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감각통합치료를 꼭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먼저 의사가 감각통합치료가 필요하다고 처방을 내린 경우다. 앨리스의 경우 낮은 전정감각과 고유수용성감각 때문에 운동기능, 자세조절 기능 등이 또래보다 현저하게 떨어져서 재활의학과 의사가 감각통합치료 처방을 내렸다. 혹은 감각프로파일 검사를 통해 감각처리능력이 또래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되는 경우에도 감각통합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감각적인 이상이 있더라도 그 정도가 크지 않으면 가정에서의 감각 놀이 활동이나 감각을 사용하는 놀이 수업을 통해 감각통합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자폐 성향이 있다면 감각통합치료는 필수라는 잘못된 공식은 잊고 의사와의 상담이나 검사를 통해 아이에게 감각통합치료가 꼭 필요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감각통합치료를 해서 나쁠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심지어는 감각처리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우리는 한정된 재화(시간과 돈)를 가지고 있으므로 꼭 필요하지 않은 치료에 재화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가정에서 간단하게 감각통합 놀이하기
양육자가 매일 꾸준하게 아이와 감각통합 놀이를 해준다면 일주일에 한 번 치료실에 방문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앨리스의 경우 꾸준하게 감각통합치료를 주 1회씩 받고 있지만 가정에서의 감각통합 놀이도 잊지 않고 해주는 편이다. 왜냐하면 일주일에 1시간이라는 치료 시간은 다양한 영역의 감각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양육자가 가정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간단한 감각통합 놀이 활동을 소개해주는 책자가 시중에 많아서 가정에서 감각통합 놀이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내가 직접 앨리스와 감각통합 놀이를 해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아이 감각운동 처방전 (강윤경, 김원철)
소근육, 대근육, 구강 근육까지 신체 전반의 감각을 다룰 수 있는 운동법을 소개한다. QR코드가 있어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감각통합놀이(석경아, 변미선, 강은선)
아이와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감각통합 활동을 감각별로 분류해 놓았다. 놀이터나 키즈카페에서 할 수 있는 감각통합 활동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 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들을 모두 읽어본다면 처음에는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 정도로 감각통합 활동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적인 활동을 무난하게 해내는 것 그 자체가 감각 처리에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도전이다. 따라서 아이가 힘들어하는 특정 영역의 감각이 있다면 꾸준하게 가정에서 그 감각과 관련된 놀이 활동을 반복함으로써 아이가 특정 감각을 처리하는 경험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꾸준한 감각통합 놀이가 제한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감각통합치료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감각을 사용하는 놀이 수업
꼭 감각통합치료가 아니더라도 감각을 사용하는 놀이 수업은 시중에 많다. 특히 백화점이나 쇼핑몰 문화센터에 개설된 수많은 유아 대상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아이가 다양한 감각을 처리할 수 있는 활동을 제공한다. (e.g., 오감 수업, 체육 활동 수업 등) 전문적인 유아체육놀이 프로그램도 감각통합치료의 좋은 대체가 될 수 있다. 다만 감각통합치료와는 달리 일대일로 진행되는 수업이 아니므로 우리 아이가 듣기에 적절한 수준의 수업인지 양육자가 점검해야 할 부분이 많다. 아직 착석과 지시수행이 잘되지 않는 아이라면 반드시 양육자가 함께 참여하는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