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 아이의 감각 (1)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증상은 사회성의 부족이나 제한된 관심사와 같이 정신적으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폐인들 중의 상당수는 신경정형인들만큼 몸을 민첩하고 세심하게 쓰지 못하는 신체적인 증상도 가지고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것도, 우영우가 물병의 마개를 직접 따지 못해서 동료 변호사 최수연이 대신 따주는 것도 이러한 신체적인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몸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앨리스의 발달 과정을 예시로 세 가지 측면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대소근육 발달이 느리다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있는 아이들은 대근육이나 소근육 발달이 또래보다 (대체로) 느리다. 앨리스는 특히 대근육 발달이 또래보다 두드러지게 느렸다. 남들은 생후 100일 정도면 가능한 목 가누기를 생후 6개월쯤 한 것을 시작으로 모든 대근육 발달이 또래보다 6~9개월씩 느리게 진행되었다. 만 5세가 된 현재의 앨리스는 대근육 발달이 완벽히 또래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어쨌든 대부분의 일상적인 장소에서는 독립보행이 가능해서 물리치료는 종결이 되었다.
대소근육 발달의 속도는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대근육 발달이 느렸던 앨리스와는 달리 소근육 발달만 느린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도 있고 대근육과 소근육 발달이 모두 느린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도 있으며, 드물지만 대소근육 발달이 모두 또래 수준인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도 있다.
눈-손 협응이 잘 안 된다
눈-손 협응(eye-hand coordination)이란 간단히 말해 눈과 손을 동시에 사용하는 능력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 이 눈-손 협응의 발달이 신경정형인 아이들보다 대체로 느리다. 앨리스가 24개월일 때 촬영한 “공이 어디로 갔지?” 영상을 보면 앨리스가 눈은 앞을 보면서 공을 뒤로 던져버려서 그 후에 공이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반적인 신경정형인 아이라면 두 돌 정도에 머리 위로 손을 들어 공을 앞으로 던질 수 있지만 앨리스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만 5세가 된 앨리스는 이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으나 눈-손 협응이 또래 수준이라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공을 손으로 받을 때와 공을 발로 찰 때 또래와 함께 놀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있다.
전정감각이 부족하다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있는 아이들은 전정감각(중력과 가속을 감지하는 감각)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정감각이 좋지 않으면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활동에 어려움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앨리스는 세 돌 때부터 밸런스 바이크(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다섯 돌이 된 지금도 밸런스 바이크를 제대로 타지 못한다. 신경정형인 아이는 빠르면 두 돌부터 밸런스 바이크를 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지면에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넘어지는 일이 허다하며 한 발 서기도 아직 할 수 없다.
몸을 잘 못 쓰는 것의 문제점
위와 같은 이유로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있는 아이들은 신경정형인 아이들만큼 몸을 잘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기관에 다니는 아이가 또래만큼 몸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 그 이상의 문제를 만든다. 예를 들어 앨리스는 현재 만 5세이지만 아직 한 발 서기를 하지 못하는데, 자신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한 발 서기를 못하는 아이는 본인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앨리스는 한 발 서기를 해야 하는 체육 활동이 있는 날마다 집에 와서는 “나는 한 발 서기를 못해”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할 정도로 속상함을 토로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동작을 혼자만 할 수 없다는 것은 또래의 몸놀이에 끼어들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안 그래도 낮은 사회성 때문에 또래 놀이에 참여하기 힘든데 몸을 잘 쓰지 못해서 놀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말이다. 이는 사회성 발달에도 당연히 악영향을 미친다.
네발 자전거로 몸 쓰는 방법 알려주기
대근육과 눈-손 협응, 전정감각을 동시에 발달시킬 수 있는 쉽고 재밌는 운동이 있다. 바로 네발 자전거 타기이다. 네발 자전거는 두 발 자전거에 보조 바퀴를 붙인 형태의 자전거로 페달을 굴리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전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앨리스는 처음 네발 자전거를 탔을 때는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눈-손 협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네발 자전거를 꾸준히 연습한 결과 빠른 속도로 눈-손 협응력이 좋아졌다. 그래서 현재는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며 동시에 페달을 굴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다. 또한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앞으로 나가는 재미가 있다 보니 앨리스는 네발 자전거를 한 번 타면 다른 운동보다는 오래 지속하는 편이다. 그래서 페달 굴리기를 통해 대근육 운동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발 자전거는 보조바퀴가 있어서 넘어질 일이 없는데 전정감각은 어떻게 발달시킨다는 말인지 궁금할 수도 있다. 사실 네발 자전거는 직선 주행 시에는 넘어질 일이 거의 없지만 코너를 돌 때 혹은 유턴을 할 때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앨리스가 네발 자전거를 타자마자 넘어지는 것을 보고 네발 자전거도 넘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앨리스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전정감각이 예전보다는 좋아져서 코너를 돌거나 유턴을 할 때도 넘어지지 않고 네발 자전거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