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지속
※오늘 내로 (2) 편이 올라옵니다.
내 다사다난한 학교생활에 대해 말해보기 위해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자.
2017년 봄, 대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여름방학에도 본가로 가지 않고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그동안 급격하게 정신병이 심해졌다.
2017년 가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한 정신병 부정기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불가능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고립 속에 지냈다. 오늘 다뤄볼 얘기는 바로 이 시점이다.
나는 놀랍게도 2017년도 신설된 전공의 학번 대표였다. 30명도 되지 않는 소수 과의 두 명뿐인 대표였다는 뜻이다. 나는 모르는데 모두가 날 알았고, 수시로 다른 과의 선배들과 연락하며 과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해’ 정도의 생각으로 맡았던 자리는, 정신병이 가미되자 함정으로 전락했다. 당장 수업도 나가기 힘든데 과 행사를 진행하려면 밖을 나서기는 해야 하고, 수시로 누군가 알아보니 어디론가 도망쳐서 숨어들고 싶은 상황이다. 설상가상, 학교 수업은 3번 결석하는 순간 F다. 집보다는 당연히 학교가 낫지만 그 학교조차 도피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신병은 날로 심해져서 점점 진도를 따라잡기는 힘들어져 가는데 1학년은 8시까지 출석해야 하는 필수 교양이 있다. 나는 관심도 없으며 비슷한 경험을 가졌다면 누군가에겐 트라우마가 없는 게 다행일 지경인 종교 관련 수업이었는데, 그만큼 내가 미션스쿨에 진학했다는 걸 실감할 때가 없었다. 게다가 1학년 필수 교양이라는 소리는 곧 내 동기들과 함께 듣는 수업이라는 얘기다. 대표로서 얼굴이 잔뜩 팔린 동기들의 눈치를 살피며 수업을 듣는 것은 고역이었다. 이 시기의 나는 ‘누군가 내가 쓰레기라는 걸 알아버리고 혐오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수치심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수업이 끝나면 아무도 날 볼 수 없는 기숙사 1인실로 도망치거나, 아예 학교 밖으로 나가버리는 생활이 며칠이고 지속되었다. 학기 후반을 향해 달려갈수록 출석할 의욕을 잃어버린 나는 결국 기숙사에서 잠만 자다가 수업은커녕 아예 알바를 핑계로 학교 밖으로 탈출하고는 통금 시간 직전에 들어오고는 했다. 중간고사 시즌이 지나갔을 무렵, 이미 결석이 2번을 찍은 수업이 부지기수였다. 이쯤이면 차라리 휴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중도 휴학이라는 문제는 둘째치고서라도, 휴학생은 기숙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러면 본가에 가야 하는데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 시점부터 부모님과 대화는 끝없이 내 잘못으로만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동안 연락이 한 통도 없니?” “별로 특별한 일도 없는데요,” “뭔 일이 있어야만 전화해? 평소에 뭐 하는데?”
난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과 용건이 없으면 대화하지 않았다. 그 흔한 문자나 카톡도 먼저 하지 않는데 하물며 전화를 도대체 어떻게 하겠는가? 전화를 걸어야 할 정도면 아주 중요한 약속을 어겼거나 즉시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야 했다. 그게 나를 지독히도 고독하게 만들었다. 나를 그렇게 키운 건 바로 부모님이었다.
“그냥 알바하고, 수업 듣고, 자고….” “공부는?” “과제할 때 하죠.” “돈은 안 부족하고?” “네 알바비 있어요.”
부모님은 이상하게도 용돈을 줄 것도 아니면서 늘 쓸 돈이 있냐고 물었다. 어렸을 때 언니가 털어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니고, 사업을 접은 이후로부터 돈을 융통할 구석이 궁한 것을 내게 숨김 없이 털어놓은 것을 잊은 걸까? 아니면 그걸 알고도 몰염치하게 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뻔뻔한 인간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무슨 일로 전화했니?” “휴학하는 게 어떨까 해서….” “조금 더 노력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이미 학비 냈잖니.” “네….”
목을 죄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돈이 없는 부모님에게 비싼 학비를 요구한 게 나였다. 물론 그마저도 이자가 싸다며 학자금대출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한 게 아니라는 상황은 내게 부담을 줬다. 결국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로 전화를 끊으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한 번은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며, 더 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다고 엄마에게 읍소를 해봤지만 그길로 서울에 올라온 엄마가 한 말은 가관이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엄마도 힘들어 죽겠는데 사는 거야.”
서울에 사는 사촌들이랑 놀고, 맛있는 거나 좀 먹으면 나을 거라며 어디를 데려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호소하기를 포기하고 괜찮아진 척 웃으며 엄마를 배웅했다. 그 뒤로 내내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사실 그냥 죽으면 되는 문제기는 한데, 우습게도 정말 살고 싶었다. 그래서 차마 시도는 못 하고, 몰래 나쁜 짓만 몇 번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던 친구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