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실 풀기

발견과 진행

by 나뭇결


※다음주부터 발견과 진행 - 학교 생활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저 개인의 일상에 관심이 없으신 분은 5월에 다시 봅시다.


외국 영화에서 상담 치료 장면이 나오는 것을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내가 겪은 것과 공통적인 부분을 꼽자면 환자와 적당한 라포를 형성한 뒤 과거를 돌아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변화가 필요하며, 변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한 뒤 고쳐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니까. 결국 상담사는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일종의 등불과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무서워하는 내 옆에 존재하면서도 한 걸음 떨어져 객관성을 지키고, 그 와중에도 내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유도해 준다.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이며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해준 상담사분은 물론, 모든 상담사분께 감사한다.


상담을 시작했던 초기에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간단한 설문이었는데,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어떻게 표출하는지에 대해 대답한 뒤 결과를 들을 때였다. 상담사님은 말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표출 방법이 한정적인 편이세요.”


슬프거나 화날 때, 억울할 때나 힘들 때의 감정은 결국 ‘슬픔’ 그리고 ‘울음’이라는 행위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저앉아 우는 것 외에 화나는 상황을 타개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알맞게 해소해 줘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몇 년간 고찰해 보니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회복력이 좋은 인간이지만 동시에 회피형이라는 점이다. 나는 친한 사람이 아니면 남이 욕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무던한 인간이고, 설사 그런 일이 있어도 금방 기분 전환이 되고는 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친해진 친구와 싸울 일이 생기거나 우울해졌을 때다. 싸우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차라리 친구에게 맞춰주는 것을 선택했고, 그에 한계를 느끼면 차라리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으로 그 상황을 피했다. 화를 내거나 싸워봤자 서로 감정만 상하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차라리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 감내하고 견뎌보다가 한계를 맞이하면 그때 이별하는 것이 좋았다.

떠오르는 감정에 그때그때 대응하기보다는 누적해 뒀다가 나중에 판단의 근거로 쓰는 방식인데, 당장의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나 자신의 스트레스 상황에 무감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는 무례한 행동에도 당장 화를 내기보다는 ‘괜찮아’라고 넘겨두되 벌점 1점을 속으로 매겨두는 것이다. 평소 정신이 건강할 땐 별문제가 없으나 여러 가지로 정신이 피폐해진다? 그러면 내가 사는 세상 자체가 벌점투성이 세상이 된다. 세상을 손절할 순 없으니 어쩌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두 번째는 내가 회피형이 된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데, 가정환경이다. 다혈질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거나 혼을 내는 일이 잦았고 막둥이였던 나는 다소 편애받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편애받는 나는 편안했는가? 아니었다. 우리 세 남매에게 아버지는 공통으로 공포의 대상이었고, 언니가 혼날 때면 오빠와 함께 책상 밑에 숨어들곤 했으나 그래도 혼이 나는 것은 언니와 오빠뿐이었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 편애받는 입장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가정의 평화가 아버지의 기분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아버지가 집에 방문하는 날마다 ‘막둥이’처럼 애교를 부렸다. 집에 아버지가 있는 상황이 무섭고 불편하고 싫었지만, 그런 감정을 직면하고 표현하느니 아닌 척, 아빠가 최고로 좋은 딸인 척 맞춰주는 게 나았다. 그러면 언니와 오빠가 공부 핑계로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았고 엄마도 편안해 보였으니까.

그렇게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나이 차이가 큰 언니와 오빠 역시 기숙학교나 다른 지방의 대학교에서 생활했다. 나는 드디어 자유였고, 텅 빈 집을 내 세상처럼 누비며 학교생활이나 다른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저녁에 어머니가 들어오시긴 했지만 별다른 얘기를 하진 않았다. 내 일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학교나 학원에서 거의 매시간 붙어 있는 친구가 아니면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방임 속에서 성장한 셈이다.

그 결과, 나는 내 일은 내가 해결하는 아이가 되었다. 자기 주도적이고 좋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직접 사람을 대하며 함께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는 내 머리 안에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린 뒤에 행동하고 통보하는, 독불장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상으로 효율적일 순 있으나, 이것은 필연적으로 과부하를 불러온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혼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 이렇게 상담과 고찰을 통해 엉킨 실타래를 찾았다. 정확히는 엉킨 실타래의 일부일 뿐이지만 이것을 천천히 풀어나가야만 회복도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가족과 거리를 두는 생활을 택했고, 대신 상담 선생님이나 주변인에게 말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가까운 친구에게, 혹은 동거인과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싸우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차라리 제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제일 원만한 문제 해결방법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물론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다소 큰 시간 차이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지금은 해내 보려고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분명히 조금은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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