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풍하는 시간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산책길

by 윤서



햇볕 아래 노출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어쩐 일인지 한국에 온 이후로 날마다 거의 두 시간쯤을 바닷가를 걷는다. 주로 반 그림자를 만드는 송림 안을 걷긴 했지만 햇볕과 바람은 늘 동행이었다. 나는 마치, 두 세계절쯤 옷장속에 갇혀있던 두꺼운 옷처럼 거풍중이라 생각했다. 지글거리듯 살갗을 파고드는 햇볕에 묘한 쾌감을 느끼거나 해풍에 머리칼이 날리면 몸무게가 가벼워졌다고 착각할 때도 있었다. 아무리 쏘다녀도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건, 자신을 방치해도 신경 쓰이지 않는 매력이 있다. 혹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 다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사막의 첩보원 같은 차림새였고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제복을 입어야 하는 어떤 공간에 혼자 민간인 복장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바람과 햇볕이 저렇게 중무장하고 싸워야 하는 무시무시한 대상인가? 혹시 모두들 아는 비밀을 나만 몰라서 이 꼴로 걷고 있는 걸까?


그 비밀 아닌 비밀은 곧 드러났다. 피부가 흰 편이었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피부색을 갖게 되었고, 나이 듦의 어떤 분기점을 넘어서면서 생기던 잡티는 아주 신이 나서 존재감을 뽐내며 영토 확장을 끝낸 뒤였다. 나중엔 소금기 밴 바람에 푸석해진 머릿결도 거슬려서 아예 짧게 잘랐다. 다행인 건 밴쿠버에 있을 땐 분명 햇볕 알러지가 있었는데 여기선 그 정도의 증상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지나치다 생각했던 옷차림엔 곧 적응했다.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따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에 익숙하다가 제멋대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제멋대로'라는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마저 한다. 유행이나 통념을 따라가지 않고 내 멋을 지킨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며칠만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그런 그들을 보는 게 즐겁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그래서 내 옷차림도 점점 장자유로워지고 있다.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를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가끔은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보다가 풋, 웃음이 터질 때도 있다. 혹시 내 안에 상당히 경직된 사고로 돌아가는 어떤 부분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웃을 때마다 사고의 근육이 조금씩 느슨해져서 언젠가는 꽤 유연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몇 주쯤 후에 내가 즐거운 오해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기는 바닷가 쪽 송림이 아니라 길 건너의 송림을 걷고부터였다.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물론 '온몸을 싸맨다'스타일은 고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뭔가 실수했다는 '감'이 온다. 나를 놀라게 한 옷차림을 했던 사람들은 바닷가쪽에 있는 호텔이나 콘도에서 묵은 여행자들이었을 것이다. 짧은 여행에 아침 운동복까지 챙겨 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마 대개가 아직 해수욕철이 아닌 바닷가에서의 한껏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며 옷을 준비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넘치는 바닷바람때문에 상당히 신경이 쓰일 차림새지만, 모네의 그림속에 나오는 여인처럼 바람에 날리는 긴 드레스와 레이스가 달린 챙이 넓은 모자나 스카프같은 것이 멋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미안할 일은 아닌데 괜히 미안하고, 제멋대로 널을 뛴 나의 얕은 생각 때문에 자꾸 헛웃음이 난다. 눈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누군가의 사정을 가늠하는 일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사람들의 옷차림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다고 깨달은 건 그녀들을 만나고부터였다. 그러니까 늘 바닷가쪽의 송림을 걷다가 좁은 해안 도로를 건너면 다시 시작되는 송림도 걷기 시작하면서 자주 그녀들을 만났다. 날마다 정확하게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간에 걷는데다 두어시간쯤 바닷가를 쏘다니다 보니 그녀들과도 거의 매일 마주쳤다. 아니, 마주쳤다기보다 그녀들은 늘 씩씩하고 쌩하고 나를 지나쳐 갔다. 마치 바람처럼.


대여섯 명쯤이 모여서 쉬지않고 대화를 하며 걷는 그녀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같기도 하고 좀 더 어린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걸음이 빠르고 날렵하다. 그리고 아무리 아침이라지만 삼복더위에 긴 바지에 긴팔, 조끼, 모자,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와 장갑까지 꼈다. 분명 색깔이 다른 옷인데 디자인이나 차림새의 구성이 너무 비슷해서 같은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어쩌면 그녀들은 같은 날은 아니라 해도 같은 가게, 혹은 같은 쇼핑몰에서 옷을 샀을 수도 있다.


둘 중의 하나다. 저런 체형을 가진 사람들은 더위를 안 타는 체질이거나 내가 모르는 엄청난 기능성 운동복을 입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반바지에 티셔츠의 팔을 걷어올리고도 더워서 땀을 흘리는 나는, 쫓아가서 옷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녀들의 걸음이 너무 빠른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신 포도 이론을 끌어낸다. 아마 나는 알러지때문에 저 무지막지한 기능성 옷을 찾아도 입진 못할 거야.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나를 '풀로 붙인 살'이라고 하셨듯이 피부에 닿는 옷감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순면과 리넨뿐이다.


바람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간 그녀들의 야무진 뒷모습을 보며 '고만고만하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오는 비슷한 키와 체형이 어쩐지 귀여워서 몰래 웃었음을 고백한다. 어쩌면 체형이 거의 같아서 옷도 색깔만 다른 같은 옷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아침마다 모여서 이 송림을 몇 바퀴씩 걷나 보다. 좋아 보인다. 나는 적어도 이 아침 시간만큼은 혼자 걷는 것을 절대로 양보할 마음이 없지만, 분주한 일상을 잠깐 물린 아침에 비슷한 관심사에 대해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도 꽤 행운이지 싶다. 그녀들도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거풍중일 것이다.


그녀들은 금세 소나무 숲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한동안 걷기를 멈출 생각이지만 아마 그녀들은 더위쯤은 상관도 안 하고 여전히 씩씩하게 걸을 것이다. 왜냐면 그녀들은 엄청난 기능성 옷을, 아니 기능성 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럽다.


아, 내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방법으로 거풍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늘처럼 뾰족한 솔잎이 쌓인 모래섞인 흙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 앞뒤로 손바닥을 부딪치며 걷는 사람, 모두들 내게로 오라~스타일로 팔을 좌악 벌리고 걸어서 괜히 피해야 할 것 같은 사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팔을 앞뒤가 아닌 좌우로 흔들며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마치 작두 타는 무당처럼 제자리에서 콩콩 뛰는 사람 등등.. 모두 '건강'이라는 엄숙한 목표를 향해서 자신만의 비법을 실천하며 걷는 사람들이다.


처음엔 좀 놀랍고 우습기도 했는데 요즘엔 마치 도인을 보듯 부럽게 쳐다본다. 사람의 생각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다양하고 큰 차이가 날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단지 생각과 성격의 차이 때문에 저렇게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소심하게 그냥 걷는 것 밖에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건강법이다. 그러니 우린 다를 게 없다. 조금 요한하게 거풍하는 사람들, 그래도 음악은 이어폰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파도 소리 들으며 걷다가 갑자기,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가 상상을 초월하는 데시빌로 들리면 표정 관리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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