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변
잠도 짧았고, 유난히 몸이 무거운 날이다. 하지만 무슨 운동선수도 아니고, 걷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진단을 받은 환자도 아니면서 습관처럼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일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꽤 오래 '부침개 놀이'를 하다가도 일단 하겠다고 정해 놓은 것은 하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이다. 그렇다고 끈기가 남다르거나 추진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설명할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인간일 뿐이다.
아마도 몇 년 만에 다시 동해와 만난 첫날부터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바다를 보는 순간, 마치 바닷길을 본 것처럼 천천히 걸어 들어가 온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이성적이고, 발을 담그는 것 정도는 할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운동화와 양말을 벗는 그 단순한 행위에 얼마나 많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귀찮게 들러붙는지 마치 동화 속에서 빨간 구두를 신은 후 그 신발을 벗지 못해 계속 춤을 추는 여자처럼 그저 쉬지 않고 걷기만 했다.
날마다 걷는 중간에 늘 바다와 마주 앉는다. 대개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바람의 감촉을 느끼는데 어느 날엔 갑자기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벌떡 모래밭으로 급하게 걸어 내려갔다. 평지가 아닌 모래 둔덕을 미끄러지듯 내려서는 동안 신발 속엔 이미 모래가 왕창 들어갔고, 이상하게도 이젠 아무리 조심해도 모래를 피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더 바빠졌다. 서둘로 해변으로 내려선다.
신발을 벗고 그 안에 벗은 양말을 넣어 파도가 닿지 않을 만한 곳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 바지를 걷어 올리고 파도를 향해 다가간다. 나는 바다에 오면 마음이 무장해제를 하듯 풀어지면서도 한 편으론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바다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로를 주지만 방심하거나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몇 발자국 더 파도 가까이 서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멈춘다. 기다리다 보면 선이 긴 파도가 나에게로 올 것이다. 드디어 세 번째로 밀려오는 파도에 발이 젖는다. 순간, 아득했다. 아득해지는 것이 몸인지 정신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곧, 생각보다 물이 따스하다는 걸 알아챈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물보다 더 농밀하고 부드러운 물질임이 분명한 바닷물이 발가락 사이를, 발목을 휘감았다.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이제야 제대로 바다와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맨발이 되는 그 단순한 행동을 못해서 한 달 정도를 망설였다. 이런 소심함과 우유부단으로 내가 놓친 세상의 자잘한 경험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내 빈약한 경험치가 모두 성격 탓인 것 같아 과거의 나에게 미안했다.
바다와 마주 보며 우두커니 서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도 하고 몇 발자국 앞으로 가보기도 하다가 바지를 좀 더 걷어 올리고 벗어 놓았던 신발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바다가 잔잔한 편이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꽤 올라가서 더운 듯해도 바다 까까이 오면 금세 공기가 달라진다. 파도가 어찌나 순하고 다정한 지 덩달아 나도 착해진다. 오래도록 파도에 다져진 모래는 단단한 듯하면서도 부드럽고, 하나하나 바닷물에 씻긴 모래 알갱이들은 발바닥의 감각을 깨운다. 적당히 시원한 바닷물을 휘감으며 걸어선지 햇살이 뜨겁지 않고, 바람은 달콤했다. 아무도 없는 긴 해안가를 아침 내내 걸었다. 이런 순간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거지?
모래밭에 앉아서 젖은 발을 말리고, 천천히 발가락 사이에 낀 모래를 털어내고 다시 양말을 신고 운동화도 고쳐 신는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바다와 마주 앉으면 종아리와 발에서 전해지는 약간 마비된 듯한, 마치 탕후루처럼 바닷물에 코팅된듯한 느낌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한, 내 마음도 잠깐, 내 것이 아닌 듯 새로워질 때, 문득 깨닫는다.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는 동안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올여름엔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게 목표인데 이룰 수 있을까? 수영복이라 불리는 옷이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잊고 산지가 백만 년쯤은 된 것 같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수영복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집에서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샌들을 신고, 큰 비치타월을 옆구리에 끼고 와서 그대로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 다시 타월을 휘감고 집으로 바로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이제 더는 바다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도 그냥 '바라보기'만 하진 않겠다는 결심을 쓴, 내 삶에게 보내는 연서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