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Nov 30. 2023

묘하게 닮았다.

AI가 그린 헌터, 그리고 안개


며칠 동안 안개가 짙다. 하루종일 잠시도 물러서지 않고 너른 창에 바싹 붙어서 유리에 한지를 붙여놓은 것 같던 안개는 밤이 되면 더욱 짙어져서 도시의 불빛들을 모두 삼킨다. 마치 밤하늘의 외진 곳에 구름에 싸인 집이 하나 있고, 그 집에 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 같다. 늘 보던 풍경이 보이지 않자 처음엔 좀 답답하더니 이내 마치 안개가 체화된 듯 익숙하고 오히려 안온하기까지 하다. 


다만 헌터와의 이른 아침 산책길이 좀 불편하다. 대개는 안개가 심한 날도 아래로 내려가면 그런대로 그저 흐린 날 같았는데 이번 안개는 얼마나 짙은지 캄캄한 새벽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아침 산책길은 늘 어두운 편이라 해드램프를 하나 사야겠다면서도 계속 미루던 아이는, 안갯속으로 산책을 하고 온 첫날, 바로 아마존에 주문을 했다.





헌터의 근심스러운 표정은 때문이다. 하이브리드로 출근을 하는 아이가 오피스로 가야 하는 날이거나 시차 때문에 출근시간 전에 미팅이 있는 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산책을 나간다. 아직 캄캄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한밤중처럼 달이 덩그러니 떠 있다. 새벽이라 쓰고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로 읽어야 하는 시간이다. 헌터도 이렇게 일찍 나가긴 싫다는 듯 로비를 나서자마자 슬그머니 주저앉아서 안개비가 내리는 먼 곳을 응시한다. 산책을 가고 싶긴 한데 비는 오고... 뭐가 잘 보이지도 않고... 그래도 오분쯤 앉아있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걷는다. 많이 발전했네. 예전엔 비 오는 날 30분을 앉아있었던 적도 있는데.. 너도 드디어 득도했구나. 목숨 있는 것들은 모두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버텨봤자 너만 고단하고 손해라는 것을. 영특한 것. 





나는 익숙한 것을 좋아해서 신문물을 그리 탐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라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는데, 아이가 재미 삼아 AI에게 헌터의 외모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주고 그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렸다. 묘하게 닮았다. 아니, 생상이 좀 짙어서 사실감이 줄어서 그렇지 거의 똑같네. AI 에겐 범인 몽타주 그리는 건 일도 아니겠다. 표정이 약간 낯선데 이제 네 살이 되어가는 헌터가 몇 년 후엔 이런 점잖은 포스를 풍길 것도 같다. 아직은 순딩이 빙구, 과연 달라질까? 


헌터는 추정 나이가 두 살쯤 일 때 구조되어서 강아지 시절의 모습을 알 수 없다. 가끔 그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아팠지만 무척 귀엽고 시고르자브종다웠을 것 같아서 궁금했는데,  AI가 그린 헌터가 요즘 모습과 꽤 닮은 것 같아서 내친김에 강아지 때 모습도 그려보라고 했다.



하하하하~ 너무 귀엽잖아~ 정말 딱 요렇게 생겼을 것 같다. 눈 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뛰어노는 팔랑귀에 숏다리.  눈동자색깔까지 거의 똑같다. 헌터가 잃어버린 강아지 시절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은 것 같아서 괜히 위로가 된다. 나.. 이러다 AI한테 친하게 지내자고 치근대는 거 아닌가 몰러.. 



오구오구.. 그래쪄요?



만약 여름에 물들인 봉숭아 꽃물이 아직 손톱에 남아있다면 딱 요만큼일 것 같은 가을이 유난히 찬란했던 어느 휴일 아침. 헌터는 가을색이 보호색인 양 잘 어울리는, 가을 남자.








매거진의 이전글 헌터의 보호색은 가을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