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Dec 19. 2023

쿠키보다 네가 더 예뻐.

혼자 집도 잘 지키고 _ The Nutcracker 



매년 12월이면 아이와 함께 '넛크래커' 공연을 보러 간다. 아이가 만든 '패밀리 트레디셔널'이다. 


금요일 저녁 7시 반 공연이라서 6시 15쯤에 집을 나섰다. 밖은 벌써 캄캄하다. 헌터를 혼자 두고 가는 게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시간 계산을 하고 있다. 1시간 50분 공연에 스카이 트레인 타고 잠깐 걷는 시간까지 합하니 못해도 네 시간은 집을 비워야 할 것 같다. 나가기 전에 헌터에게 저녁을 먹인 후, 오줌도 누이고 들어왔다.





날씨가 좋다. 비도 안 오고 춥지도 않고 밤공기가 청량하다. 작년에도 저녁 공연을 갔는데 그땐 돌아오는 길이 좀 추웠다. 퀸 엘리자베스 극장, 건물 외벽에 작고 흰 전구들이 가득 걸려서 반짝거린다. 좀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사람들이 꽤 많다. 한껏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마치 공연 리허설을 하듯 팔랑거리며 돌아다닌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합창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층 발코니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몇 군데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을 뚫고 우리는 일찌감치 이층의 자리로 찾아갔다.


첫해 빼고는 계속 같은 발레단의 공연인데, 올해는 작년만 못하다.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뭔가 좀 부족했다. 이런 마음 때문인지 밴쿠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어째 작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언제나 마음과 기분이 정화되고 순해지는 공연이라 돌아오는 길, 아이와 팔짱을 끼고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겨울 밤거리가 다정하고 향긋하다.


그런데 발랄한 마음과는 달리 좀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늦은 시간이긴 해도 다운타운이니 찾아보면 이 시간에도 뭔가 먹을 만한 곳이 있겠지만 집에서 기다릴 헌터를 생각하니 그럴 수는 없어서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역 입구에 간이매점처럼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팀 호튼이 아직 문을 열고 있었다. 도너츠 여섯 개와 커피를 샀다. 커피는 기차를 기다리며 마시고 도넛은 집에 와서 먹었다.


두 사람이 함께 밤 외출을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선지 헌터는 제 침대가 아닌 현관에 엎드려서 우리를 기다리다 잔 모양이다. 현관문 앞 마루가 따뜻했다. 미안해라.





미안하니까 '미리 크리스마스' 간식 하나 먹자! 강아지용으로 나온 크리스마스 쿠키인데 갖가지 모양에 색깔도 예쁘다. 요즘, 신통한 헌터. 별다른 훈련도 안 했는데 간식을 놓고 기다리라고 해봤더니 시선은 간식에 고정하고서도 오케이, 할 때까지 기다린다. 간식 먹을 생각에 한껏 설레는 표정의 헌터, 예쁘다. 근데 이 과자, 너무 귀여워서 어디 먹겠니? 응? 예쁜 거 먹고 더 예뻐질 거라고? 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