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 산속의 바다 _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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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으로 가는 표를 끊고 나서 막 떠나려는 버스에 바로 올랐다. 버스표에 적힌 좌석 번호를 찾아갔더니 누군가 벌써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면서도 비켜 줄 생각을 하지 않아서 운전수에게 좌석표 대로 앉는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별 쓸데없는걸 신경 쓰는 사람을 다 보겠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치껏 적당히 중간쯤의 빈자리를 찾아가 앉자마자 버스는 거칠게 출발했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탔던 널찍하고 승차감이 좋았던 우등버스가, 내가 떠나 있던 세월을 정면으로 느끼게 했다면 장평으로 떠나는 버스는 그 세월을 되돌려서 나를 과거로 옮겨다 놓았다. 이상하게도 내가 없는 동안 변한 것들에겐 저절로 수긍하면서도 거의, 혹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들을 만날 때면 알 수 없는 불안에 잡혔다. 꼭 변했기를 바라는 것들이 행여나 고스란히 버티고 있을까 봐 두려워서였을까. 버스는 어느새 시내를 벗어나 대관령을 오르고 있었다.
이젠 강릉에서 서울까지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편리하고 빨라져서 좋기는 한데 무수하게 뚫리고 허물어졌을 오래된 산세를 떠올리자 그 안에서 살던 짐승과 나무들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나를 마모시켰던 아픔도, 이 길처럼 다듬어진 게 아니라 사라진 짐승들처럼 세상의 어딘가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같은 세월로 분해되어 원형은 사라졌다 해도 통증만은 여전히 질긴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말은 부유하는 그런 기억들을 용케 비켜가며 산다는 듯일 것이다.
대관령의 산골마을에 숨어있는 작은 터미널마다 다 들리는 시외버스였다. 그럴 때마다 매번, 불현듯, 훅, 마치 데쟈부처럼 어떤 냄새가 났다. 그건 오래 잊고 있었던 기억의 냄새였다. 정차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허름한 간판에 쓰여있는 지명에서 쉽게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아챌 수 있었지만 내 기억력은 이미 원근감을 상실했다. 아직 또렷하게 기억하는 대관령의 지명들을 막힘없이 떠올릴 순 있지만 순서대로 맞출 수는 없어서 버스 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도 비슷했다.
손님을 기다리는 것인지 배차시간 때문인지 시동을 켜 둔 채 서 있는 버스의 기사는 창문을 열고 가까운 점방집 사내와 허물없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이제 막 버스에 올라탄 아낙이 건네는 감자떡을 받아 들고 소소한 집안일을 참견하기도 했다. 잊고 살았던 이런 풍경들이 바로 어제도 본 것처럼 낯설지 않아서 나는 좀 불안했다. 어쩌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 스티로폼으로 된 상자를 들고 약한 술 냄새를 풍기는 한 남자가 올라타자 금방 비릿한 냄새가 버스 안에 가득 찼다. 그 남자가 미처 의자에 앉기도 전에 버스는 부릉거리며 출발했고 그 무방비의 흔들림 때문에 먼 기억 하나가 울컥, 차멀미처럼 치밀어 올랐다. 속초였다.
사 년 동안 데리고 살았던 동생들이 막내까지 대학진학을 하면서 나간 후, 속초의 작은 바닷가에 있는 콘도를 하나 빌려서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이동이 많은 하루를 보낸 후인데도 밤에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거리다 결국은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바다를 바라보이는 쪽을 향해서 소파에 누웠다. 넓은 거실 창으로 보이는 밤바다는 마치 폭넓은 주름치마의 주름을 펴듯 조용하게 속살을 드러냈고, 멀지 않은 곳의 집어등 불빛은 아름다웠다. 밤바다에 모여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은 집어등 불빛 때문에 순한 마을처럼 따스해 보였다. 밤새 조업을 하는 어부들의 힘겨움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집어등 불빛이 만드는 아련하고 따스한 풍경에 염치없이 위로받는다.
그날 밤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집어등 불빛은 깊은 밤바다 속의 오징어들을 불러내고 난 뒤, 내 시린 기억들도 끌고 와 푸른 형광 빛 불면으로 쏟아놓고 돌아갔다. 다음 날 종일, 마음은 한 가지 결정을 위해 수십 번도 더 뒤집혔지만 끝내 나는 강릉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날 내가 선뜻 아버지를 찾아갈 수 없었던 것은 앙금처럼 남아있는 야속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엄마가 없는 집이라 그랬을 것이다. 설령 내 삶에서 가장 큰 혼돈과 상처를 준 사람이 엄마라서 그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어도 그건 다른 문제였다. 엄마가 있어야만 친정인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겨울의 속초에서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지도 못하고, 게를 유난히 좋아하는 일행들 때문에 오징어회를 먹자는 말조차도 못 하고 눈 쌓인 미시령을 넘으면서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진 아직도 초고추장을 만드실 때 콜라를 넣을까?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에 오징어 회와 함께 나온 초고추장을 만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릴 때, 엄마가 조금 남아있는 콜라를 없애려고 슬쩍 건네면 아버지는 늘 새 콜라병을 따셨다. 김이 다 빠진 콜라는 제대로 초고추장의 맛을 낼 수 없다고 하셨다. 문득, 나와 아버지의 관계도 그 김 빠진 콜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이제 다시는 예전의 유대감을 지닌 아버지와 딸이 될 수는 없으리란 생각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여전히 빠닥빠닥하게 썰어놓은 오징어회를 아버지가 만드신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고 싶지만, 오징어회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는 언젠가는 내가 오징어회를 좋아한다는 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초고추장을 만들 때 꼭 콜라를 넣던 기억 따윈 이미 잊으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먹은 초고추장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먹은 걸 보니 어쩌면 시판되는 초고추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이미 아버지가 만드신 초고추장의 맛을 잊은 것이리라. 세월은, 조금만 모른 척하면 저 혼자서 너무 멀리 달아난다.
5
버스는 나들목을 통과하자 시골길로 들어섰다.
기사는 이제야 도착 예정시간에서 꽤 지났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갑자기 온전히 험해졌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아직도 밑바닥에 남아있던 모진 기억들은 제멋대로 튀어 올랐고 나는 다 늦게 멀미를 하는지 입안 가득 신물이 고였다. 앞 좌석의 등받이에 붙은 손잡이를 잡고 이마를 댄 채 고개를 숙였다. 몸이 갑자기 한쪽으로 심하게 쏠려서 밖을 내다보니 장평 터미널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버스가 멈췄다. 내려봐야 서둘러할 일도, 급하게 가야 할 곳도 없다는 듯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천천히 그들 뒤를 따라 내렸다. 내릴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면 버스는 다시 새 손님들을 태우고 되돌아갈 것이다. 마치 언제가 되었든 제 짐을 다 부려놓고야 떠나는 아픔처럼.
청운가든 가주세요.
터미널 입구 쪽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를 탔다. 청운 가든 가주세요.
엄마는 오늘 식당에 계 모임을 하는 단체 손님이 있어서 마중을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택시 기사에게 식당 이름만 말해도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엄마가 가르쳐준 상호를 말하면서 발음이 꼬였지만 택시 기사는 다시 물어보지도 않고 차를 출발했다. 터미널을 빠져나온 택시가 채 10분도 달리지 않아서 큰길에서 벗어나더니 야트막한 경사길로 좌회전을 했다. 이어서 아담한 양옥이 몇 채 보이고, 그 첫 번째 집의 별채 건물로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청운 가든’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창문을 통해서 차가 마당 옆의 공터로 들어서는 게 보였는지 미처 택시에서 내리기도 전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를 보자 갑자기 흔들리는 시선을 수습하기 위해 일부러 느린 동작으로 택시비를 내고도 자꾸 숄더백의 끈을 고쳐맸다. 9년 만에 만나는 엄마, 그러니까 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완벽하게 충만한 관계가 없듯이 철저하게 결핍된 관계 또한 없을 것이다. 서로에게 왜?라는 물음은 이제 하지 말기로 하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신 때문에 내가 겪어야 했던 것들로 억울해하지도 말자. 공평하지 않다던가, 도리에 어긋난다는 따위의 화석 같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관계, 때론 남이길 바랐지만 우린 그걸 가족이라고 부르며 여기까지 왔다.
문득, 어떤 감정에 마침표를 찍듯 떠오른 생각은 엄마와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야 할 텐데 혹시라도 그 웃음 끝에 묻어있을지 모를 오랜 단절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엄마도 선뜻 택시가 있는 쪽으로 오지 않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엄마가 서 있는 쪽을 제대로 쳐다보았다. 어느새 엄마 곁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얼굴이 자세히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남자가 선한 미소를 띠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하고 평화로웠다. 단지 그 모습만으로도 이제야 엄마의 긴 방황이 멈추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엄마를 찾아오는 내내 갈비뼈를 누르던 불안의 정체가 이 평화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까운 산골짜기에 모여 있던 바람이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한꺼번에 몰려나와 엄마 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바람 때문에 심하게 펄럭이는 옷섶을 여미는 엄마의 분주한 손놀림이 내게는 마치 영화 속의 슬로 모션처럼 주변의 풍경을 밀어내고 있었다. 엄마의 손 외에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그 짧은 착시현상에서 나는 언뜻, 엄마의 세월을 보았다.
어쩌면 엄마 또한, 자신이 일으켰던 삶의 격랑 속에서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어쩌다 일이 그렇게 되었고, 한 순간에 모든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 흘러가서 엄마는 그 물길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론 잘못인 줄 알면서도 당장의 해결법을 알 수 없어서 혹은 천성이 그런 사람이라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흘러간 것이다. 그래서 때론 잔잔한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서 있을 때조차도 늘 누구보다도 목이 말랐던 사람도 엄마였을 것이다. 어쩌면, 만약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에게 좀 더 관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엄마만 있을 수가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된 생각으로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지 않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단정했던 것 같다. 내가 좀 더 일찍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 바라볼 수 있었더라면 모든 게 좀 덜 아팠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문득, 엄마의 배경처럼 정지했던 풍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바람이 스쳐간 햇살은 따사로웠다.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가끔, 아주 가끔 만나게 되는 그런 순간일 것이다. 겹겹의 세월 동안 함부로 구겨 넣었던 설움 잘 타는 시간이, 마치 아코디언의 주름이 펴지듯 한꺼번에 당겨지면서 폭넓은 한 음(音)을 내는 그런 순간.
먼 풍경 어디쯤에서 서성대던 산바람이 내 등에 얼굴을 묻는지 가슴이 뻐근했다. 마치 그 바람의 무게에 밀리듯 엄마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무엇인가 둔탁한 것이 쇄골을 치고 지나갔고, 그 울림 때문에 깊은 안쪽에 숨어있던 오래고 단단한 것들이 목쉰 의성어를 내며 기울어졌다. 나는 약간 휘청거렸다.
순간, 불현듯,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젖히고 어떤 문이 나타났다.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벽처럼 서 있던 문, 내 무채색의 기억들을 가두고 닫아버렸던 문, 내가 버린 문 같기도 하고 엄마가 돌아오지 못한 문인 것도 같은, 낡고 흠집 많은 문 하나가 먼 산처럼 불쑥 가슴을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더는 참을 수 없는 숨을 토해내듯 깊고 긴 한숨을 쉬었다.
끝내 잃어버린, 혹은 유기시킨 세월이라 생각한 것들이 문고리처럼 내 마음 안에 잡혀왔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자, 산속 가득 술렁거리던 잘 말려진 늦가을 바람이 쏴아 소리를 내며 몰려왔다. 제멋대로 헝클어지는 긴 머리칼에서 울컥, 물미역 냄새가 났다. 하지만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유연하게 흔들리며 풀려나가는 것은 내 머리칼이 아니라 이명증으로 갇혀 있던 소금기 밴 원망이었다.
넉넉하게 내리쬐던 늦가을 햇살이 순한 등허리를 보이며 동그랗게 말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날리는 붉은 낙엽들이 어딘가 집어등 불빛을 닮았다. 분명 이 산속 어딘가엔 바다가 숨겨져 있다. 먼 시간의 안쪽 어느 세월엔, 그 높은 록키 산맥이 바닷속이었던 것처럼 산에는 산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다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엄마를 향해 걸어가며 멀리서 온 파도처럼 하얗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