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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Apr 02. 2024

사월에 걸려온 전화 _ April in Paris

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g



사월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_ 체로키 족


좀 늦된 나뭇가지의 새순에서도 먼 씨앗의 꿈이 보이는 사월, 네이티브 인디언인 체로키 족은 사월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봄밤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포근합니다.


내 삶의 머리맡을 더듬어 봅니다. 손에 잡힌 그 씨앗이 내 바람이나 소망과는 다른 꽃을 피운다 해도 설령, 발아되지 못한다 해도 내일 아침엔 사월을 핑계 삼아 다시, 씨앗을 심겠습니다.


하지만 부풀어 오른 겸손한 흙 한 줌에게 서툰 희망을 짐 지우지 않도록 조심하겠어요. 그저 사월이 되었고 내 머리맡엔 씨앗이 있었고 부푼 흙냄새에 잠이 깬 아침이라 그 씨앗을 심을 뿐이라고 짐짓, 별일 아닌 듯.


Salmonberry @Coquitlam River Trail

사월의 숲 _ 새먼베리 Salmonberry  


아직 어린 연록으로 흔들리는 사월의 숲은 방금 씻은 맨얼굴처럼 싱그럽습니다. 미처 끝이 여물지 못한 햇살은 나무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순하게 피는 들꽃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꼬리가 길어집니다. 숲 속의 모든 것들은 아직 비슷한 표정을 지니지만 유난히 시선을 끄는 진분홍 꽃이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작은 별을 매달아 놓은 것 같죠.


새먼베리는 집 근처의 작은 숲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특히 크릭이 있는 곳에선 군락으로 자라고 있는데 가지는 낭창낭창하면서도 볼품없지만 키가 워낙 커서 그냥 꽃이라기보다는 꽃나무 같기도 해요. 모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졌는데 아마도 연어가 올라오는 크릭 주변에서 잘 자라기도 하고 색깔 때문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얘는 좀 서운하겠어요. 봄에 오는 핑크 새먼, 여름에 올라오는 사카이 새먼, 아무리 연결해 봐도 좀 밑지는 작명이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땐 우리끼리 '마젠타 별꽃'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젠 분홍색이라면 치를 떠는 이상한(?) 어른들이 되었네요.


이렇게 늘 편애하던 꽃인데 여름에 빨갛게 맺히는 열매는, 향은 진하고 별맛 없이 좀 시어요. 그래도 반가워서 계절 인사하듯 그 자리에서 한 두 알쯤은 따서 입에 넣습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지만 새먼베리를 처음 알고 난 후의 두 해 정도는 이 시고 맛없는 열매가 그렇게나 예뻐하던 꽃이 남긴 선물인 걸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군락을 이루니 꽤 넓게 퍼져서기도 하겠지만 같은 자리에서 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열매와 꽃을 연결시키지 못한 이유는 꽃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열매의 맛은 싫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향기가 없어도 소박하고 고운 진분홍 꽃잎은 예뻐하면서도 너무 진한 향기 때문에 열매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 꽃과 열매는 모두 한 뿌리에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에서의 깨달음은 곧잘 삶으로, 인간으로 치환되죠. 열매는 싫지만 꽃이 좋아서 새먼베리를 좋아하거나, 꽃은 좋지만 열매가 싫어서 새먼베리가 싫어하는 건 순전히 각자의 판단입니다.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호불호의 척도와 비중이 다르니 이 판단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건 편견이나 취향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 긍정적이기만 한 단어는 아니지만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 수도 있으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햇살이 꽃잎을 적셔 바람이 달큰한 날들,

멀리 가는 마음을 끊어냈더니 그 무엇도 아쉽지 않은 봄날입니다. 이제야 얇은 꽃잎뒤에 숨어있던 부신 햇살이 보이고 그 햇살 너머로 내리던 비도 봄비인걸 알겠습니다.



사월이 되면 생각나는 시 _ 사월에 걸려온 전화 _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가사 해석 _ April in Paris _ 파리의 사월


April in Paris, chestnuts in blossom

Holiday tables under the trees

April in Paris, this is a feeling

No one can ever reprise

I never knew the charm of spring

Never met it face to face

I never new my heart could sing

Never missed a warm embrace

Till April in Paris, whom can I run to?

What have you done to my heart?


파리의 사월,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그늘 아래에 느긋하게 앉아있어요.

파리의 사월,

아무도 느껴본 적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나는 봄의 매력을 몰랐었죠.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런 것들로

내 마음이 들떠 노래하게 될 줄 몰랐어요.

따뜻한 포옹이 그리울 줄도 몰랐어요.

파리의 사월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누구 곁으로 달려갈까요.

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April in Paris _ Ella & Louis


이곡은 1931년 12월부터 119회 상연된 뮤지컬 Walk A Little Faster에서 '이블린 호이'가 불러 히트시킨 넘버입니다. 토니 베넷, 프랭크 시나트라 등 여러 가수들이 커버했는데 엘라 피츠제럴드루이 암스트롱의 듀엣곡으로 올립니다. 밤꽃향 은은한 봄밤 같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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