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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Apr 15. 2024

오래된 인골과 마주 선 순간

 대성동고분박물관_ 부장품이었던 복숭아


김해에 도착한 첫날, 근처를 돌아다니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던 대성동고분박물관으로 왔다. 고백하자면 숙제하는 기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관은 부담 없이 좋아하지만 박물관은 그 이름에서부터 어쩐지 학교 공부의 연장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좀 엄숙하고 무거운 느낌이랄까. 아트막하고 둥근 형태의 지붕을 가진 박물관 건물의 입구는 아담하면서도 독특했다.



대성동 고분 박물관은 토기 50점, 고지도 1점, 전시 복제품 181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보관관리관청인 경상남도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귀속유물 1,493점을 관리·보관하고 있다. 중요 유물로 김해 대성동 고분 46호 출토 동복과 옥장 등 대성동 고분군 3·4차 발굴 유물들과 김해 율하리·본산리 유적 출토유물 등이 있다.



전시관은 전체적으로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도입의 장, 개관의 장, 고분의 장, 교류의 장, 문화의 장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어서 왼쪽으로 들어가서 원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나오는 구조다. 정면에 위치한 도입의 장은 관람객의 전시 관람을 돕기 위한 정보 검색 및 안내·휴게·체험의 공간으로, 박물관 전시자료 검색기와 3D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이미지 월(image wall), 작은 도서관 등이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입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만나는 벽에는 '구간들이 왕을 맞이하다, 구지가.'라는 제목의 설명과 함께 구지가가 적혀있다. 구지가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강림 신화' 속에 삽입된 내용이다. 구지가의 핵심은 '머리를 내놓으라'는 것인데, 현제의 우리들에겐 사형 혹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머리를 내놓는다는 것이 당시에는 곧 새로운 탄생을 뜻하여, 하늘에서 내려진 알에서 수로왕이 탄생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바로 연결되는 '고분의 장'은,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목관묘와 함께 실제 크기로 재현된 당시 모습을 재현하여 금관가야의 고분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꾸민 전시공간이다. 다소 호화로운 가야의 유물 중에서 소박해 보이는 가야의 숲 3호, 널무덤은 시기에 따라 무덤의 양식이 변했던 금관가야의 무덤 형태 중에서 성립기의 양식으로 1세기 최고 지배자의 무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덤의 양식도 점차 복잡하고 호화로워진다. 금관가야의 전성기 때 무덤인 대성동 88호분 덧널무덤은 으뜸덧널과 딸린 덧널로 구분되는데 재현한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무덤으로 당시 순장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 보면 살아있는 사람을 그야말로 생매장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이렇게 재현된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을 배우라'라고 했듯이 순장이라는 악습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인류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걸까? 어느 시대든 현재는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순장, 노예제도, 여성과 특정 인종의 투표권 같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제도들이 달라지면서 고통받고 불평등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면 지금 우리 당면하고 있는 숱한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항상 바른쪽으로 나아가려고 노력 중이란 걸 믿는다.



꽤 많은 토기들이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사용하던 토기들이 세월을 건너와 반듯하게 놓여있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놀람과 감탄을 주던 인골이나 장식품들과는 달리 어떤 익숙한 교감이 느껴졌다.



개관의 장은 기마 인물과 가야 무사를 재현한 인물상과 전투지 등을 형상화해서 철을 기반으로 성장한 금관가야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당시의 경제적 대외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물증이 되었다. 금관가야는 동아시아의 주요 철 생산지로 기원전 2세기 무렵 이미 철 생산을 시작하여 3세기 무렵에는 낙랑, 대방, 마한, 동예 등지에 수출하고 철을 매개로 일본과도 교류한 흔적이 있는 철의 왕국이었다.



전시장에는 재미있는 전시물이 하나 있었다. 대성동 57호 분에서 조사된 금관가야 여성의 복원 그림이 관람자가 보는 위치에 따라 인골 또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한 렌티큘러(Lenticular) 기법의 설치물이다. 정면에 섰다가 살짝 왼쪽으로 움직이면 인골이 보이고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여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박물관 입구에서 여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영상 모니터 앞에 모여있는 걸 보았는데 다소 정적인 전시물을 보다가 이런 설치물을 만나면 박물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대성동 91호분 순장자 인골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문득, 멈춰 선 곳.

살아있는 내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옛사람의 인골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른 장소에서 인골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겠지만 정성껏 손질해서 맞춰 놓은 누군가의 인골은 뭔가 뭉클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지금 치렁치렁 달고 사는 모든 욕망과 고난을 다 털어내고 몇 개의 빼 조각들로 누워있는, 오래전엔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을 유골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메멘토 모리_죽음을 기억하라. 박물관이란 장소는 과거와 현재의 중간쯤에 서서 가장 정제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되는 곳인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지난 5월(2022년)의 어느 신문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 박물관 무덤에서 단일 고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최대 수량의 복숭아씨와 오이 속 씨앗이 출토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박물관 측은 이번에 출토된 복숭아씨와 함께 오이 속 종자, 돔 뼈 등을 볼 때 여름에 장례를 치른 것으로 추정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유기물 분석 결과 다양한 크기의 재배 복숭아가 과실 상태로 부장 된 것으로 추정되며 4세기때 고분에서 복숭아를 과실 상태로 부장한 풍습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무덤 안에 복숭아를 부장 하는 습속은 채협총, 정백동 19호 분 등 중국 한문화의 영향을 받은 낙랑 무덤에서 주로 확인됐었다. 복숭아 부장 풍습은 중국 한나라의 식생활과 음식물 부장 풍습이 유입된 결과로 금관가야 목곽묘 문화 기원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국내에서 복숭아씨가 주로 출토된 것은 생활유적과 우물, 집수정, 구하도 등으로 청동기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나 복숭아가 지닌 의례적·벽사적(귀신을 물리침) 기능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숭아는 벽사의 의미, 주술적, 의례적 성격을 지니며 *서왕모의 반도 설화와 관련해 장수의 의미로도 해석된다. 내세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던 금관가야인 들은 다음 생에서도 현세에서의 명성과 평안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많은 유물과 함께 순장자를 안치하고 복숭아를 부장해 불로장생을 기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도도 _ 민화

부장 되었다가 씨만 남은 복숭아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자 오래전에 읽었던 민화 이야기(윤열수, 디자인하우스,1996)의 복숭아의 그림과 글이 생각났다. 민화에서 복숭아는 장수와 더불어 자손과 관련되어 있다. 그림 속의 복숭아는 여자의 부푼 가슴처럼 보이지만 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젖먹이를 키우는 엄마의 유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젖이 풍부하다는 건 곧 아가의 건강과 관련이 있으니 육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겼을 것이다. 반면 유교에서는 생김새에서 여자의 엉덩이가 연상된다는 이유 때문에  달갑지 않게 생각했고, 무속에서 복숭아는 '양'의 기운이라 했으며 제사 때 복숭아를 쓰지 않는 이유는 '음'인 귀신이 복숭아의 '양'기때문에 제상에 오지 못하고 도망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선도라 불리는 복숭아는 하늘에 사는 *서왕모만이 가지고 있는 복숭아나무에서 열리는 천도복숭아인데 불로장생을 의미한다. 선도는 꽃피는 데 3,000년, 열매 맺히는 데 3,000 년, 익는데 3,000년이 걸려서 한 알을 먹기 위해서 9,000년을 기다려야 하는 과실인데 서왕모에게 이 천도복숭아를 얻어먹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신선이 된다는 중국의 전설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익기도 힘들고 구하기도 힘든 '천도복숭아'를 신선이 될 출신도 아닌데 훔쳐 먹고 무려 삼천갑자(18만 년)를 살았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동방삭이다. 그리고 이 삼천갑자를 산 동방삭이가 까메오로 출현하는 우리의 옛이야기도 있다.


옛날 어느 김 씨 집안에 아주 귀한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래 사는 것(?)들의 이름을 다 붙여서 아주 긴 이름을 짓는다. 하지만 긴 이름 때문에 오히려 위험에 처한다는 이야기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처럼,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주려고 만든 우화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이의  이름은, 김 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 (이 동방삭이가 위의 전설 속 그 동방삭입니다. ) 예전에 어느 개그맨이 이 이름을 더 길게 늘여서 몸동작과 함께 마치 노래처럼 유행시킨 적도 있다.


김, 수환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터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누가 저 좀 말려주세요.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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