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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치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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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un 19. 2022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고 말해

당신이 그리울 때,




일 년쯤 전에 새로 생긴 월남국숫집은 맛이 깔끔했다. 꽤 가리는 것이 많은 내 입맛에도 별로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조용하게 친절했고, 다른 음식에 비하면 싼 국수 한 그릇을 예쁜 꽃무늬가 있는 받침접시에 받쳐서 가져다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동행이 물어서 알게 되었는데 주인은 중국계 비엔남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생고기룰 넣은 건 싫어하고 덩어리고기를 미리 삶아서 수육처럼 얇게 썰어서 듬뿍 얹어주는 25번을 먹는다. 따로 나오는 숙주는 살짝 익혀달라고 하지만 가끔은 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말하지는 못하고 생숙주를 얼른 뜨거운 국수 맨 밑바닥에 숨긴다. 그러면 향이나 식감이 내가 좋아하는 쪽에 가깝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러 찾아서 먹은 적도 없고, 선택할 수 있다면 늘 밀리는 음식이 국수였다. 한국에서 살 때, 몇 번 갔던 결혼식장에서도 잔치국수는 먹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그 이전에 수십 년 동안 먹었던 국수 보다도 많은 국수를 먹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보고 싶으면 국수가 생각나는 이상한 등식이 내 삶에 슬그머니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막막하게 떠도는 그리움은 따끈한 국수 국물에라도 말아야 추위를 덜 탔고, 별 힘들이지 않고 끊어지는 국수 가닥을 훌훌 넘기고 나면 포만감만큼 마음이 둔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국수를 먹을 때 지나가는 시절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멸치국물을 싫어한다. 어쩌면 국수를 싫어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같은 국수 종류인 월남국수나 비빔국수 같은 것은 잘 먹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멸치국물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고 국수가 싫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신이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국수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다 언젠가는 당신은 잊어버리고 국수만 먹고 싶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의 입맛이 변하듯

마음이 변하고

시간이 변하고

기억이 변하고

그리움도 변한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고 믿는 것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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