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치찬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Jun 20. 2022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요?

까마귀 우는 아침



무엇이든 움직이고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세월이 흐른다는 것도 딴은 의지가 되는 일이지요. 정체되지 않은 것만이 줄 수 있는, 변화와는 다른 위안이 있거든요.


어느 날 아침 문득, 마치 제 집인 양 지붕 위 굴뚝에 진을 치고 깍깍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에 잠이 깨고도 머리맡이 한없이 고요해지면 알아채요. 흙탕물이 고였던 내 마음의 웅덩이에 물꼬가 틔였다는 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제와 달라진 건 없어요. 문제와 불편의 경계를 함부로 넘나들던 일들은 모두 다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걸요. 마치 어젯밤과 똑같은 자리에 놓여있는 방안의 가구처럼 말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이 하루가 어제만큼 무겁지 않아요. 마음이 스스로 움직여서 그런 거죠. 마치 시간처럼요. 알람은 벌써 울렸고, 서둘러 일어나지 않으면 아침 시간이 바빠질 수도 있는데 나는 잠시 온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있어요. 그리곤 내 마음에게 타이르죠.


걱정하고 절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러는 거지? 세상의 모든 것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는 걸 또 잊은 거야? 밝은 쪽을 향해 한 발이라도 더 딛으려고 애쓰는 건 네 삶에 대한 의리와 경외심이지. 네가 할 수 없다고 해결되지 않거나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 교만이야. 얼마나 많은 긍정의 기류들이 너를 둘러싸고 있는지 잊지 마. 설령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아서 평생 믿기만 하다가 끝난다 해도 뭐 어때. 의심하고 부정하며 숨어들 웅덩이를 파다 끝나는 것보다는 낫잖아.


물론 알아요. 이렇게 아침에 꺼내 입는 새 옷 같은 마음도, 이내 하루의 때가 묻고 쉽게 얼룩이 진다는 걸. 하지만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요? 때 타는 게 싫어서 깨끗한 옷은 옷장 속에 두고 늘 더러운 옷만 입고 살 수는 없잖아요. 더러워지면 또 빨면 되고 그렇게 되풀이되는 게 인생인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고 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