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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치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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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un 23. 2022

서툰 기억에게

그대, 잘 사는지...




언덕을 이루는 동네의 큰길 저 아래, 

작은 엘리멘트리 스쿨이 있고 

그 학교 담장 곁에 

숲이라 부르면 부끄럼을 탈 아주 소박한 대숲이 있다.


어떻게,

언제부터,

대나무는 여기서 자라기 시작했을까.


비교적 한산한 길이지만 그래도 시내버스가 다니고, 

출퇴근 시간엔 꽤 바쁜 도로인데 

그 분주함도 아랑곳없이 

서럭 서럭 자라는 대숲 앞에 서면 자꾸 눈이 감긴다. 

어느 봄엔 

바삭하게 마른 옥수수 껍질 같은 옷을 벗더니 

장정 팔뚝처럼 푸르고 굵은 대나무 새 살이 솟아올라 

황홀하더라. 

눈물겹더라. 

그 성성한 푸른 대를 타고, 

세월 밖으로 쫓겨났던 까마득한 기억 한 겹, 

물결처럼 달려와 내 손목을 잡는다.


하늘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 

검은 대나무 숲을 스치면, 

오죽헌의 사임당, 

옆동네 초당의 난설헌 여전하시고 

경포대 벚꽃 진 자리 밟고 서서 

갈대숲 호수와 눈 맞추며 동해에 든다. 

내가 아는 세상보다 

더 넓은 유리벽 너머, 

하얀 뼈 보이며 몰려오는 겨울바다를 

스무 살 내 상처에 덧대면 

대숲에 든 파도가 뒤척이는 소리, 

언제나 아득했다.


문득,

이제는 아예 지워진 서툰 기억에게 미소 짓는다.


그대, 잘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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