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치찬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Oct 09. 2023

나의 바다

잘 지내는지, 나 없이도





스무 살 무렵 바다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관령 깊은 골짜기에 갇혔던 첫눈이

이별만 하다 죽은 새의 한 줌 뼛가루처럼 날리면

말씨 투박한 도시

외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바다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표정 없는 풍경을 밀어내고

의자에 앉아서도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나는,

손금이 시렸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버스는 더 가지 못해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호숫가 갈대밭에 첫 발을 디디면

마중 나와 있던 바다 냄새

와락 나를 껴안아

눈물이 났다.


갈매기 낮게 나는 모래톱

밤새 앓던 먼 섬의 상처처럼 해초가 뒹굴고

나는 바람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희망보다 도피를 꿈꾸던

무릎 꺾인 내 스무 살은

어린 꽃게의 걸음처럼 비틀거리고

야반도주의 당돌한 꿈은

파도의 이마에 닿아

표백되어 돌아왔다.


아파하지 않아도 끝내남는 사랑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관계를

목숨걸지 않아도 살아있는 세상을


그런 헛된 꿈을 꾸다

덜컥, 서른이 되고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서랍 속에 밀어 넣듯

덜컥 덜컥 함부로 나이를 먹었다.


아직도

낡은 서랍을 열 때처럼 덜컥, 소리가 나는

스무 살 나의 바다는

끝내 잊히지도 않고 내 세월의 입을 막는데

두고 온 먼바다에게

나는 가끔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냐고

나 없이도.   





매거진의 이전글 은밀한 희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