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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치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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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Oct 11. 2023

빈 배

다시, 아픈 꿈을 꾸기 시작하네.



나는 자꾸만 떠나고 싶었지.

 

부스러기 햇살조차 굴절되지 않고

하늘빛 온통 수직으로 내리 꽂히던 날들

꿈꾸지 않아 아프진 않았지만 어쩐지,


허전했어.


내가 놓친 시간을 훔쳐 달아나던 수평선이

고개 꺾어 뒤돌아 볼 때,

낮은 피리소리로 지나던 바람이 말했지.

그건 세월이야.

이젠 떠날 수 없어.


그래도 나는 아직 멀리

더 멀리 떠나고 싶지.

해풍 속에 내 허밍음을 꽂아놓고

눈먼 세월을 깨워 환하게 흔들리고 싶지.

그러다 돌아와 납작한 표정으로

수평선의 속살에 대해 상형문자를 쓰고 싶지.

 

골방에 숨어있던 그리움이

돌아오지 않는 수평선을 찾으러

끝내

나를 뚫고 떠난 후

다시 홀로 눈물 말랐을 때,

가난한 소금기 밴 나뭇결 하나

나를 찾아왔더군


떠난 건 그리움이 아니라

축축하고 흐린 소망일뿐이야.

 

이제 비로소

다시,

아픈 꿈을 꾸기 시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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