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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un 24. 2022

묵묵한 행운

Find a penny, pick it up.




당장은 사용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혹은 딱히 분류하기 애매해서 수납장의 어느 칸 에도 속하지 못하는 물건들을 모아 놓는 서랍을 정리하다가 지퍼백에 들어있는 한 움큼의 페니(1센트)를 발견했다. 이것도 분명 돈인데 반갑기보다는 숨겨둔 게으름을 들킨 민망함과 함께 낭패감마저 드는 이유는, 2014년부터 캐나다에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동전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특별한 날임을 알려주는 Google Doodle은 2014년 2월 4일을 Last Day of Canadian Penny로 칭했었다.


요즘엔 주로 신용카드를 쓰니까 집안에 동전이 모일 일이 거의 없지만 현금을 꽤 사용하던 예전에 쉽게 동전이 모였는데 그걸 알뜰하게 사용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지갑 속에서 자꾸 늘어가는 동전이 무겁게 느껴지면 동전을 모아놓는 통에 부었다가 그 통이 꽤 차면 따로따로 분류해서 은행에 가서 바꾸기도 했는데 (동전을 종류별로 정해진 종이에 싸서 은행에 가져가야 하는데 이것도 꽤 '일'스럽다.) 그럴 때도 1센트짜리 동전은 아무리 모아봐야 부피에 비해서 너무 적은 액수라서, 한 마디로 종이에 싸는 '품삯'도 안 나오겠다 싶어 그냥 계속 모아둘 때가 많았다. 아마 집집마다 페니를 모아두는 크고 작은 유리병을 하나씩은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유통이 활발하지도 않은 데다가 페니의 금전적 가치는 1센트인데 만드는 비용은 1.6센트가 들어서 만약 페니를 만들지 않는다면 정부는 연간 11밀리언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페니가 없어지게 된 배경이다. 2012년에 마지막으로 페니를 만들었고, 2014년부터 공식적으로 페니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화폐가 되었다.


캐나다 조폐공사(Royal Canadian Mint)에서 더 이상 페니를 만들지도 않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페니도 모두 수거한다는 발표를 한 후, 은행에선 가져오는 페니를 유통되는 돈으로 바꿔주면서 스스로 동전을 바꿔갈 수 있는 기계도 놓았다. 공식 발표로는 이 당시 약 35Billion 페니를 모아서 녹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 년쯤 후에 토론토의 한 신문에서 발표하기를 아직도 2 Billion 정도의 페니가 어딘가에 있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수치에 일조를 한 셈이다. 꽤 큰 유리병에 절반쯤 차 있던 페니를 교환기간 동안 은행에 가서 바꿨는데 그 후로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가방이나 지갑 속, 서랍이나 공구통, 자동차 콘솔박스 등에서 잊을만하면 한 두 개씩 페니가 나왔고 그럴 때마다 모아 두면서도 표 나게 생활에 보탬이 되는 가치가 아니라서 무신경했다. '겨우' 1센트라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실한 마음을 끝내 다시 한번 들킨 것이다. 어쨌든 페니는 이제 돈이 아니지만 돈이었던 기억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는 없지만, 사실 페니는 예전부터도 금전적 가치보다는 '행운'의 의미가 더 강했던 동전이다. Find a penny, pick it up. All day long, you'll have good luck


'페니'가 행운의 상징이 된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 '금속'은 신이 준 선물이라서 악마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미신은 문설주 위에 매달아 놓는 말발굽이나 금속 팔찌, 동전 등으로 발전했고, 네이티브가 소중하게 생각하며 물물교환에도 사용하던 구리와 같은 재질인 '페니'도 행운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원래는 95~98% 정도가 구리였는데 2000년부터 steel이 주가 되고 니켈 약간, 그리고 구리 도금으로 동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얘기는, 오래된 영국 빅토리안 라임에서 유래된 것인데 결혼식날에 신부에게 행운을 가져오는 물건으로 꼭 챙겨야 하는 4가지에 관한 것이다.


Something old, something new, something borrowed, something blue and a silver sixpence in your shoe


'뭔가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빌린 것, 푸른색인 것, 그리고 신발 속의 6펜스짜리 은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6펜스 은화보다는 페니가 더 구하기 쉬우니까 자연스레 전통도 변해서 a silver sixpence in your shoe는 a lucky penny in the shoe로 바뀌었고, 그 덕분에 '페니'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페니를 발견했을 때 앞면이 보이면 행운이고 뒷면이 보이면 불행이고 주워서 다른 사람에게 주면 행운이 옮겨간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시콜콜하게 자세한 것이 무슨 상관이랴. 캐나다 화폐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진 페니가 '행운의 상징'으로 아직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이 작고 가벼운 페니의 행운에 기대서라도 이루어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소진된 낡은 꿈을 복원시키고 싶었을까? 어느 늦은 오후에 불쑥 나타난, 이젠 과거가 된 1센트짜리 동전 한 움큼을 은행에 가져가는 대신 계속 보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물에다 식초와 소금을 풀고 잠깐 담갔다가 칫솔질로 깨끗하게 씻었다. 꼬질꼬질했던 세월의 때를 살짝 벗은 동전들은 새것 같진 않아도 향수로 간직하기 좋을 만큼 빛이 났다. 동전들을 마른 수건으로 닦으면서 그동안 돈답게 취급해 주지도 않았던 페니들을 처음으로 하나씩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페니도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943년에 만들어진 동전이었다. 설명이 필요치 않은 짠한 무엇인가가 나를 툭. 건들었다.


페니는,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의 흐름에 따라 문양이나 재질이 바뀌다 결국엔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먼지 쓴 일상의 구석에서 발견되면, 사람들은 한때 페니를 사용했다는 추억과 페니가 지닌 행운이란 의미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로 잠시 즐거울 수도 있다, 


문득, 나를 위해 존재했었다는 혹은, 내가 끝까지 잊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여겨지는 묵묵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결코 소유할 수는 없었지만 내 삶이 휘청거릴때마다 그 진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마음을 얹고 기다려 준 것들에게, 많이 사랑했었노라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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