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곁에서 숨쉬기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시선은 저절로 오른쪽으로 향한다. 바다가 있는 쪽이다. 넓은 송림 너머 바다의 속살이 수평선과 닿아있는 게 보인다. 그러면 또 마음은 뒤척인다.아침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7월 말까지 걷기를 쉬려고 했는데 걷지 않으면 마음도 그렇지만 몸도 무지근한 걸 보면 두 달만에 걷기에 중독된 것 같다. 운동할 때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칸나비노이드(Canabinoids)라는 성분은 마리화나의 주성분이기도 해서 운동도 중독성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싶다.
나는 결코 '운동' 개념으로 걷기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그냥 걷는 그 시간과 다리와 팔을 교차하며 앞으로 나가는 단순한 행동, 언제든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바다,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내겐 '숨'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시간이니 '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쉰다'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심신이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널브러져 있는 상태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 것이다. 나는 늘 전자였다. 커피와 비스킷 몇 쪽, 혹은 집어먹기 쉬운 과일이나 스낵 따위를 갖다 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아이패드로 유튜브나 영화를 틀어놓고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최고였다. 하지만 이렇게 보낸 쉬는 날은 피곤이 풀렸다고 느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 '여전히 피곤하다'였다. 그렇지만 내 휴식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상 탓이라 여겼다. 아마 쉬는 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거나 특별한 장소에 가는 걸 일의 연속으로 여길 만큼 늘 몸이 고단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쉬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의 양자택일은 옳고 그름보다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야 하고, 그래서 어느 한 가지가 옳다고 결론을 내리는 건 의미가 없을 때가 많다.
'숨'과 '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새삼, '숨쉬기'라는 말은 별생각 없이 쓰지만 굉장한 의미가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숨쉬기가 끝나면 죽는 것이니 새삼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숨'과 '쉼'이 한 단어 속에 들어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좀 특별해진다.
숨에는 뱉고, 들이마시고, 멈추고, 등의 수식이 붙지만 특별히 긴장하거나 충격을 받아 호흡이 편치 않을 때 우리는 왜 다급하게 숨을 크게 '쉬라'고 말할까. 잘 쉰다(쉼)는 건 그러니까 잘 살아있는(숨)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근거 없는 나만의 의미를 준다. 덧붙이자면 '음식이 쉬다' '목소리가 쉬다'라는 말의 속뜻도 음식을 먹지 않고 너무 오래 놔두거나 목소리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나치면 쉬어야 하는 것이다. 새삼 '쉰다'라는 의미를 되짚으며 잘 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잘 놀고 잘 쉬는 방법에 서툰 편이다. 이젠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월급쟁이도 아니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도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내가 생각하는 '쉼'과는 거리가 먼 환경적인 조건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느냐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있느냐라는 걸 새삼 절감한다. 그래서 가장 내 마음을 잘 아는 '나'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바다 곁을 걷는 일은 모처럼 찾은 '나의 잘 쉬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데 이걸 또 멈춰야 하니 미련이 남는 거다. 여름이 아니든가, 아침 시간이 자유롭든가,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가능했다면 좋았을 테지만 모처럼 마음먹었을 때, 자잘한 일상조차 내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니 미련 떨지 말자,
고 하고선 이틀 뒤, 다시 바다로 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발코니 창을 활짝 열고 바깥 날씨를 가늠한다. 오늘은 꽤 시원한 데다 구름이 옅게 깔려서 걸을만할 것 같다, 살짝 들뜬다. 날마다 7시 반에 준비하는 아침상을 10분쯤 슬쩍 앞당긴다. 여름 동해 아침의 십 분은 바다를 딛고 오른 태양의 뜨거움을 꽤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바다는, 낚시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판을 깔아놓은 것 같다. 이런 날은 당연히 바람이 없고, 바닷가지만 별로 시원하지도 않다. 걷는 동안 습기가 느껴진다. 땀이 나는 것과는 다른 음험한 기운이 손바닥까지 고인다. 이런 습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살짝 놀라는 바람에 불쾌하기보다는 신기했다. 하지만 곧 아침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다. 한국의 여름은 내게, 전혀 걸을만하지 않다. 그래도 바다가 있으니 견딜만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