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파리 아저씨 빵집.

by 윤서



빵집은 늘 포근하다.


그것은 실내온도가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빵 굽는 냄새와 평화롭게 놓여있는 갖가지 빵이 만들어 내는 안온함이다. 나는 가끔, 세상에서 가장 순하게 생긴 음식이 빵이라는 생각을 한다. 둥글고 폭신한 생김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식생활이 많이 달라진 지금까지도 생계와 관련된 '주식'이라면 빵보다는 밥이 먼저 떠오르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맨밥 한 술을 반찬도 없이 꾸역꾸역 먹는'다는 말은 내가 글로 써 놓고도 읽을 때마다 목이 메이지만 '눈물 젖은 빵'이란 말은 그저 희극 대사처럼 들리니 말이다.


이주일에 한 번씩, 조금 멀리 있는 대형 한국마켓에 갈 때면 근처에 있는 '파리 아저씨 빵집'에 들린다. 분명 장보기에 포함된 장소지만 이 빵집에 들르는 일은 장보기가 아니라 어딘가로 놀러 가는 것처럼 살짝 들뜬다. 빵이야 거의 모든 대형마켓의 베이커리 코너에서 살 수 있지만 그곳에선 절대로 살 수없는 종류의 빵이 있기도 하고, 낡았으나 여전히 순한 추억을 만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이 빵집이 생겼을 때, 간판을 보는 순간 아무 망설임도 없이 빵집의 문을 열었다. 나는 물건이나 음식을 고를 때 그것을 보는 순간의 첫인상이나 느낌에 꽤 의존하는 편이다. 다행히 내 감각과 취향이 협응을 잘 하는 덕에 실망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빵집의 간판을 보는 순간, 한국에서 자주 가던 '크라운 베이커리'나 '파리 바게트'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훨씬 이전부터 단골로 가던 춘천의 작고 오래된 서울 제과점의 소보로빵, 팥빵, 크림빵, 찹쌀도넛츠까지 냄새까지도 떠올랐다.


빵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처음 보는 여러 종류의 빵에 감탄했지만 나는 갑자기 과거의 어느 한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곳엔, 오랫동안 내가 먹어보지 못한, 그래서 몇 번쯤은 입맛이 깔깔할 때 생각났던 빵들이 다 있었다. 한 삼일쯤 빵만 먹고 살 사람처럼 욕심껏 빵을 담았다. 빵이 식량의 대표적인 단어인 나라에 살면서 빵 앞에서 마치 귀한 음식을 만난 듯 허둥대는 이유는 빵이라고 다 같은 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리 아저씨 빵집'에서 내가 빵에 파묻혀 행복해지는 동안 아이의 시선은 자꾸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실내 안쪽에 놓인 서너 개의 테이블, 대여섯 사람은 앉음직한 꽤 넓은 테이블 둘레로 예쁜 담장을 쌓듯 무늬 고운 천으로 감싼 디귿자 모양의 칸막이가 높게 쳐 있었다. 일어서지 않으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높이였다. 이곳에선 보기 드문 형태이기도 했지만 그때 아이는, 툭 터진 공간보다는 조금쯤 은밀함을 풍기는 것이 더 매력적일 나이였다. 일기장에도 엄지손톱만한 은빛 자물통이 달려있던 시기였으니까. 아이는 그 테이블을 자꾸 흘금거렸다. '파리 아저씨 빵집'은, 내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낡은 기억이었고 아이에겐 새롭고 설레는 낯선 풍경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방과후 친구들과 올 수 없는 걸 안타까워했다.



내 갓 스물의 날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친구가 좋았던 시절이었다. 틈만 나면 만나고 싶었고, 밤새워 서너 장은 후딱 넘기는 긴 편지를 쓰고도 만나면 또 할 말이 너무 많았다. 늘 많은 생각과 느낌이 새롭게 돋아났고, 말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그것들은 바람 부는 오후의 은사시나무 이파리처럼 사락거렸다.

스낵코너에서 소박한 저녁을 사 먹고도 비엔나커피나 블루 마운틴을 마실 카페는 신중하게 골랐다. 커피 한 잔의 호사를 위해서라기보다 마주 앉아서 긴 시간 얘기를 나누기 위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서면서도 그저 아쉬웠던, 아름다운 미열을 품고 살던 시절이다.


언젠가는 친구와 추운 밤거리를 걷다가 발이 너무 시려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들어간 적이 있다. 나무로 된 문과 낮은 유리창으로 된 그 카페의 이름이 '소행성 B612'였다. 젊은 주인 남자는 전혀 어린 왕자를 닮진 않았지만 한쪽 벽 가득 커다란 바오밥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카페는 아주 작아서 카운터 옆에 앉아있는 그가 우리의 대화를 훔쳐 듣는다고 느낄 때쯤 그는 바오밥나무 곁에 있는 우리의 테이블에 에이스 크래커를 놓고 갔다. 나는 아직 그때의 냄새들을 기억한다.


그 도시를 내가 먼저 떠났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땐 다른 친구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부침이 심했던 가족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나는 늘 가족들보다도 그 친구들이 더 그리웠다. 어리고 서툰 삶의 진통도 무늬가 되게 하고,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불평과 절망을 하든 여전히 '나는 나'라는 것을 이해하고 아껴주던 친구들, 이제는 화석처럼 굳어버린 우리의 시간이지만 그때 즐겨 부르던 노래처럼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때가 바로 우리의 '유치찬란'한 시절의 시작이었으므로.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자주,

조금씩 의자를 옮겨가며 마흔세 번이나 해 지는 풍경을 바라봐야 했던 어린 왕자의 어느 하루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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