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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02. 2022

오월의 편지

괜찮아, 그건 삶의 스크레치 같은거야.



벌써 오월이야.


언제부턴가 달력이 넘겨질 때마다 '벌써'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말아. 날짜는 아예 잊고 요일만 겨우 기억하며 주말을 기다리던 때처럼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닌데 시간은 늘 너무 빨리 지나가고, 때론 어딘가에 흘리고 온 것처럼 뭉텅,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해.


식구들이 모두 볼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 저녁, 오랜만에 느끼는 이 드문 적막감이 그리 나쁘진 않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꽤 좋아하는 편이야. 물론 식구들한테 말하진 않지. 그러면 분명 섭섭해할 테니까.


하루 종일 흐리던 하늘이 점점 낮아지는데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저녁 바람을 불러들인다. 문득, 바람에서 비 냄새를 맡으며 혼자 풋`웃었어. 아직은 맑은 하늘인데 내가 바람에서 물 냄새가 난다고 할 때마다 아이는, 내 표현을 놀리며 웃지만 사실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나를 보거든. 90% 이상의 적중률이야. 아이가 말하길, 나는 전생엔 네이티브였을지도 모른대. 식구란 이런 거겠지.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가도 사소한 물건이나 냄새 하나만으로도 금세 떠올라 미소 짓거나 걱정하게 만드는 존재. 그런데 사실 요샌 비 냄새 보다도 오른쪽 어깨와 손가락이 쑤셔서 비가 오리란 걸 예감할 때가 더 많아. 재미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런 통증도 식구 같은 거라 여겨.


언젠가 중고물품을 파는 광고를 보다가 '생활 스크래치'란 말을 처음 알게 되었어. 물건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생기는 흠집을 말하는 거겠지. 기발하고 살가운 표현 아니니? 물건을 내놓은 사람은 파는 게 목적이니까 이왕이면 흠 없고 매끈하다고 광고를 하고 싶겠지만 솔직하게 흠집이 있는 걸 알리면서도 이건 시간의 흐름과 사람의 손길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약점이니까 너그럽게 이해하고 수긍해 달라는 뜻이잖아.


한 때는 골병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던 직업병이었다가 이제는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처럼 조금만 무리하거나 힘들면 복병처럼 튀어나오는 내 신체적 통증이나, 식구들 삶에 찾아오는 실패나 절망, 후회 같은 것이나 그걸 지켜보며 무거워지는 내 걱정거리나, 모두 중고가구의 '생활 스크래치'같은 '삶의 스크래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네게도 해주고 싶은 말,


괜찮아, 그건 '삶의 스크래치'같은 거야.


창밖을 내다보니, 숲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동네 사람들이 보인다. 저 세 아줌마들은 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옷차림으로 산책을 다녀. 아마 엿들어보면 늘 비슷한 대화를 나눌 거야. 하지만 언제나 표정은 밝고 걸음은 힘차고 경쾌하지.  혹시 내가 너무 울울한 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야. 타고난 성향이 분명히 다를 나는 그들처럼 살진 못하겠지만 가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거나 일부러 노력을 해서라도 나도 좀 가벼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아니나 다를까, 좀 전까지는 지치고 피곤해서 얼른 간단한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에 퍼지고 싶었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숲이 그리운 거야.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 거지. 배가 조금 고팠지만 버터 스카치 캔디 한 알을 입에 넣고, 후드가 달린 얇은 비옷을 입고 집을 나섰어. 곧 비가 올 것 같았거든.


낮은 회색빛이 켜켜로 스며든 숲이지만 계절을 따라 시나브로 변하는 숲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어느새 진분홍 새먼베리 꽃잎이 떨어진 자리로 푸른 열매가 맺히고 블랙베리의 흰 꽃이 들장미처럼 피어나고 있더라.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자잘한 들꽃들의 피고 짐은 차라리 바람 같다고 해야겠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늘 같은 풍경인 듯해도 스스럼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찾아가는 식물들 덕분에 이맘때의 숲은 날마다 조금씩 살이 오르지.


숲은 늘 이렇게 조용히 자리바꿈을 하는데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만 자주, 망가진 서랍을 열 때처럼 덜컥거리며 이 삶을 건너가고 있나 봐.


긴 겨울비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듯, 단 이틀 동안 내린 단비로 강물은 부풀고 숲은 또 얼마나 쑤욱 자랐는지 하늘이 좁아 보였어. 오월의 초록에는 얼마나 많은 각각의 명도와 채도가 있는지 아니? 색깔 중에서 우리 눈이 식별할 수 있는 다른 색이 가장 많은 것이 초록이라는 말이 실감 나. 오월의 숲은 세상의 녹빛을 죄다 불러 모아 조각이불을 만들어 펼친 것 같아. 그 조각 이불을 들추며 걷는 듯한 숲길에서 갑자기 포실하게 부푼 진한 흙냄새가 나더니 툭툭 빗방울 듣는 소리가 16분 음표처럼 떨어진다.


비 오네.


후드를 쓸까 하다가 그냥 걸었어. 숲엔 나무가 울창해서 어지간한 비로는 그리 젖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비가 올 줄 알면서도 저녁 숲으로 들어선 내 심사는 기어이 비를 좀 맞고 싶었었나 봐. 오월의 저녁, 비 맞는 들풀과 나무들의 향기는 함부로 헝클어져서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근심들을 뭉근하게 덮어준단다. 그 싱싱한 목숨의 향기는 내 고단함에 얽힌 원망과 변명쯤 시시하게 만들어 버려. 그래서 뭔가 잘 풀리지 않거나 잘해보려는 의지가 자꾸 달아날 때, 혹은 그 의지 속에 숨겨둔 것들을 결국 놓아주어야 할 때, 나는 숲을 걷나 봐.


숲 속을 걸을 땐 별로 젖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숲을 빠져나와서야 비가 꽤 많이 내린다는 걸 알았어. 숲의 입구에서 집까지, 몇 분 안 걸리는 그 길을 천천히 걸으며 비를 맞았단다. 금세 머리칼과 얼굴이 흠뻑 젖었지만 빰에 닿아 흐르는 오월의 비는 따뜻했어.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없는 위안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허락하셨는지도 몰라. 그래서 지치고 헝클어졌을 땐, 그 자연으로부터 순하고 맑은 기운을 얻고 돌아가, 다시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말이야.


참, 사과꽃 이야기를 빼먹었네. 언젠가 내가 얘기했지? 이 숲길 중간쯤, 내가 터닝포인트로 정한 좁고 파란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서 스무 걸음쯤 더 걸으면 야생 사과나무 다섯 그루가 산다고. 기억하니? 작년 어느 가을 아침,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툭툭 떨어져 뒹굴고 있는 사과를 여러 개 담아 온 적 있었잖아. 알이 작고 단단한, 푸른빛이 많이 도는 야생 사과는 별 맛은 없었지만 처음 한 입 깨물었을 때의 빳빳한 감촉과 신선한 풋것의 향기는, 고 작고 볼품없는 사과 한 알에도 온 숲이 다 담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했지.


오늘,

그 사과나무에,

녹우(綠雨) 같은 이파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발그레한 사과꽃이 피는 걸 보았어.


들춰보면 아릿한 마음, 여럿 숨어있는 '오월'이지만, 오늘은 그저 오월의 찬란하고 따뜻한 치마폭에 안겨 잠시 쉬자. 열매 맺기 위해선 언젠가 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시름도 없는 듯 저토록 순하게 피는 사과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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