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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치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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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Nov 12. 2022

은밀한 희망

미련[未練] :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함



밤새 뒤척이다 찾아간 버라드 만 동쪽 끝의 벤치. 바다는 벌써 어디론가 떠나고, 감쪽같이 몰랐는지 멍하게 누워있는 갯벌에선 지릿한 냄새가 났지. 드문드문 물새들, 혹시 그때 그 새도 있을까


언젠가 발끝까지 찰방찰방 물이 차 오르고 새들이 자맥질로 아침밥을 찾아먹던 날. 작은 물새 한 마리 내게 말을 걸어왔지, 내가, 하나 둘 숫자를 세다가 서른, 하며 숨을 멈추면, 기다린 듯 작은 숨 토하며 물 위로 튀어 오르던 고 작은 물새. 마치 암호를 대듯 매번, 호명 30에 물밖으로 나오는 작은 새에게 나는 묻고 싶었어. 그렇게 시간을 재 듯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를 정확히 알아내면 행복해지는지. 혹시 더 외로운 건 아닌지.


작은 새는 허공을 쪼다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고 세던 숫자를 잊어버려 숨이 찰 무렵 나는 보았네, 옆구리를 누르며 돌아 눕는 텅 빈 갯벌. 후드득 떨어지고도 더 질기게 남아 등뼈에 촘촘히 박혀있는 굴욕과 침묵의 시간들. 환절기 잔기침처럼 사라지지 않는 살아있는 것들의 근심. 나는 결국 갯벌 앞에 무릎을 꺾으며 내 등뼈의 지렛대가 휘청휘청 우는 소릴 들어.


끝낼 수가 없어 시작하지도 못할 때, 모른 척하는 마음이 패총처럼 쌓일 때, 끝없이 기다렸는데 결국은 기다린 게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었을 때, 아니 잃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는 걸까.


바람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누운 갯벌이 축축한 목소리로 나를 일으켜 세우네.


몰래 달아난 바다가 내 꿈을 더 멀리 데려갔다고 슬픈 건 아니야. 단지 훤하게 드러난 속살, 너무 오래 감춰두어 까칠해진 그 속살을 견디느라 마음에 조금 실금이 갔을 뿐. 이제 다시 또, 아픈 것들이 꿈꾸는 시간인걸. 미련은 가장 은밀한 희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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