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일요일.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잠깐 생각한다.
이게 올해의 첫눈이 맞나?
눈이 내렸던 지난 1월도 올해인데...
그러다, 올해의 겨울은 지금부터 시작이고 지난 1월의 눈은 작년 겨울의 끝에 내린 눈이라는 생각이 들자 무슨 대단한 문제를 해결이라도 한 듯 잠깐 쌀뜨물 속에 잠긴 것 같았던 생각에서 빠져나온다. 일상의 사소한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습관대로 말하고 쓰던 단어나 표현이 낯설어서 허둥댈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뭔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드는 걸 굳이 나이 탓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올해는 우기가 늦어서 단풍도 늦기도 했고 미처 물들기 전에 시들어 떨어진 잎들이 많아서 발코니에서 내다보는 앞산의 풍경이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도 아직 가을이라 생각했는데 첫눈을 11월에 만나네. 비 끝에 내린 눈이라 쌓이진 않았지만 제법 함박눈이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쳐서 사람 사는 동네엔 첫눈의 흔적이 금세 지워졌지만 숲에 내린 첫눈은 그대로 얼어서 풍경이 춥다. 해도, 갑자기 찾아온 첫눈에 얹어두는 오래된 시 한 구절만으로도 유순해지는 시간.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중에서)
눈이 그치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더니 일주일 내내 맑았다. 이맘때 맑은 날의 노을은 걸음이 느리고 황홀하다. 11월이 노을이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걸, 이 집에서 살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특별할 것도 그리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이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창가에 서서 노을의 등에 얼굴을 묻으면 나의 하루도 그런대로 무뎌진다. 고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