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인사
겨울이 벌써 문 앞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11월 끄트머리에 걸터 앉은 가을이 짐을 싸는 아침, 눈이 내렸습니다.
폭설주의보를 옆구리에 낀 눈발은 점점 더 부풀어서 퇴근길의 거리가 허둥댄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큰 사고다 없길 바라면서도 걱정은 잠시, 곧 아이는 재택근무 중이고 저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마치 네셔널지오그래픽의 영상을 보듯 창밖의 설경을 바라볼 수 있음에 안도합니다. 지금 길 위의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치러내는 중이고, 저는 지금의 내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이니까 이런 마음을 탓하진 않습니다. 작년 12월까진 저도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길 위에 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불과 일 년 전의 기억이 왜 이리 까마득할까요. 아마도 지난 일 년이 제 삶에서 드물게 공간적 변화가 많은 한 해여서인지도 모르겠어요. 공간의 변화는 심리와 습관, 더러 관계의 변화까지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챚니다. 그래서 이 공개적이지만 은밀한 비밀의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꾸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겠죠. 집 떠나면 불편하고 고단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시간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들은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금세 흐릿하게 잊히는데 어떤 일들은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니 말이에요. 그러니까 시간 혹은 우리가 세월이라고 부르는 것은 숫자가 쌓이는 것과는 무관한, 우리의 마음을 통과하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터무니없이 멀게도 가깝게도 느껴지고,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들은 언제나 위로받을 곳을 찾아헤맵니다. 그게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어떤 행위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엔 깨닫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 상처 입은 기억이란 결국엔 스스로 봉인해야 할 시간임을 알아채기 위한 - 과정일 뿐이란 것을요. 이럴 때쯤, 12월의 첫날을 만납니다.
십이월의 곁에는 매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내가 서 있습니다.
의욕은 말처럼 마음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이든 몸이 허락해 주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됩니다. 그것도 모르는 마음이 저 혼자 자만하며 까부는 게 의욕일 거란 생각을 했어요.
몸을 억지로 조이고 있던 모든 나사를 풀어놓고 지내보니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나 꼭 해야 할 것 같았던 일들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도 별로 성가시지 않습니다. 내가 점점 비어가고 있다고 느끼다가도 어쩌면 그건 내가 가진 쓸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란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어디론가 떠나는 계절 동안,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건 아닌 달'이라 불렀던 네이티브 ‘아라파호'족의 아름다운 언어를 떠올렸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바닥에 닿았으므로 다시 떠오르는 것들의 부력을 지켜보는 12월, 결국 사라질 것과 끝내 남을 것의 구분이 그리 어렵진 않겠어요.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갑자기'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나 무의식 속에서 진행되어 온 것의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갑자기 만난 실망이나 슬픔, 절망 따위에 상처받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겠디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일뿐이니까요.
오늘은 12월의 첫날, 모처럼 마음이 맑습니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조도의 등을 켠 듯,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도 여과지에 걸러진 것처럼 순하고 다정합니다.
이 겨울, 따습게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