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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Jan 08. 2023

바오밥 나무에 관한 오해

나쁜 습관



바오밥 나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일 것입니다. 십 대에 처음 읽은 어린 왕자를 지금까지 다섯 번쯤 읽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책이자, 누군가 언급을 하면 갑자기 터무니없이 순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기도 하지요.


'어린 왕자'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어른들은 '중절모'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그린 그림과 어린 왕자의 마음에 드는 양을 그릴 수 없자 작은 구멍이 있는 상자를 그려 주며 이 안에 네 양이 있으니 구멍으로 보라고 하는 융통성 '갑'의 상황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슬픈 풍경이라고 했던 마지막 그림, 그리고 마르고 닯토록 사랑받고 인용되기도 한 여우의 기다림을 표현하는 문장입니다. 아, 이건 기다림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에 관한 것이군요. 하지만 오늘은 '바오밥 나무'에 대해서 쓰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다가 바오밥 나무가 나오는 부분에서 멈칫, '나쁜 습관'을 대입시키고 있는 절 발견했거든요.


어린 왕자의 별에는 좋은 식물도 있고 나쁜 식물도 있습니다.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지만 금세 여러 가지 것들을 얹어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좋은 식물은 좋은 씨앗에서 오고, 나쁜 식물은 나쁜 씨앗에서 온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씨앗은 땅속 깊이 비밀스럽게 숨어있어서 싹이 날 때까진 그것이 좋은 씨앗인지 나쁜 씨앗인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다 어느 날 씨앗이 기지개를 켜고 태양을 향해 매력적이고 순진한 작은 가지를 뻗기 시작할 때 잘 살펴봐야 해요. 만약 무순이나 장미 넝쿨의 싹이라면 원하는 만큼 싹이 나게 해도 되지만 혹시 나쁜 싹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즉시 바로 뽑아버려야 해요.


공교롭게도 어린 왕자의 별에는 끔찍한 씨앗들이 있었지요. 바로 바오밥 나무의 씨앗들.


만약 너무 늦게 바오밥을 발견했다면 절대로 없앨 수 없어요. 그것들이 자라면 행성 전체를 덮고, 뿌리는 바로 모든 걸 관통해서 내 작은 행성을 산산조각 내고 말 거예요. 그러니 매일 아침 몸을 씻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처럼 행성을 잘 살펴봐야 해요. 바오밥 나무는 어렸을 때는 좋은 식물의 싹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잘 살펴보다가 바오밥나무와 장미 넝쿨의 싹을 구분할 수 있을 때 즉시 뽑아야 하는 거죠.


어린 왕자의 '바오밥 나무'를 '나쁜 습관'으로 바꾸면 어렵지 않게 나쁜 습관에 대해 수긍하게 됩니다. 나쁜 습관은, 편함으로 가장한 게으름이나 즐거움으로 포장된 유혹, '내일부터'라는 반복의 주문에 걸린 무기력같은 것으로 자랍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시작된 나쁜 습관은 빨리 고치지 않으면 곧 내 생활의 일부가 되고 급기야 내 시간을 갉아먹거나 나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을 침범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습할 수 없는 실수나 절망스런 후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제가 가끔 유튜브에서 듣는 강의 중에 하나가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인데 얼마 전에 들은 말씀이 떠오릅니다. 평소에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지치거나 당황했을 때는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제어기능이 약해지는데 그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습관'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들었는데,

평소에 욕을 자주 하는 친구가 있어서 가끔 충고를 했답니다. 너 계속 그러다가는 언젠가 중요한 순간에 큰 실수를 할 거라고. 하지만 그 친구는 자기가 그 정도의 분별력도 없는 줄 아냐며 큰소리쳤는데, 어느 날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만난 자리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서빙하시는 분이 실수로 음식을 바지 위에 쏟았을 때 반사적으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고 해요. 그래서 결국은 결혼 승낙도 받지 못하고 그날 밤 소주를 마시며 200번쯤 그때 했던 욕을 했다는... 그냥 재밌는 비유로 만든 얘기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전혀 안 그럴 것 같던 사람이, 혹은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예의나 상식에서 벗어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처음엔 상처를 받다가 그것이 두세 번 반복되면 그때까지 쌓아왔던 좋은 감정들이 허구였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 거죠.


처음으로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땐, 바오밥 나무가 작가가 만든 상상의 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오밥(특히 영문 알파벳으로 나열하면 더욱:baobab)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현실감보다는 동화적 감성이 훨씬 컸거든요. 하지만 바오밥 나무는 실제로 있는 나무였습니다. 그것도 상상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나무였어요.


바오밥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전 세계에 8종이 있는데 그중에 6종류가 '마다가스카르'에 있다고 합니다. 보통, 높이는 30m, 몸통 둘레는 10m 이상으로 평균 수명이 5,000년 정도고 가장 오래된 나무는 6,000년이 된 것도 있습니다. 검색하면서 본 사진 속의 바오밥 나무는 우리가 늘 보는 여느 나무들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오래 살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떤 나무들은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주 생경스럽기도 합니다. 나무지만 식물성이 아니라 동물성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바오밥 나무도 있었어요.


건조한 사막 지역에서 자라는 바오밥 나무는, 광합성을 할 때 잎의 기공도 아주 조금 열고, 물도 아주 조금만 사용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바오밥 나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는 삶의 방식이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반면에 뿌리는 아주 깊고 튼튼해서 나무의 키가 20미터 정도라면 뿌리는 40미터까지 뻗어나가서 물을 찾는답니다. 이만하면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이 터질까 봐 걱정이 되어서 싹을 보는 즉시 뽑아버리고, 어린 왕자의 경고를 들은 쎙떽쥐베리가 긴장해서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사실적이고 힘이 넘치게 그릴 만하죠?


바오밥 나무는 '말라가시' 언어로 숲의 어머니란 뜻입니다. 특이하게도 나무의 몸통이 비어있어서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거나 시체를 매장하는 '관'의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상당한 양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서 6개월 정도까지 물 없이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코끼리들, 혹은 사람들까지도 바오바브나무에서 물을 얻기도 하고 잎과 열매는 식용으로, 껍질은 옷감 대용으로 사용합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해오는 바오밥 나무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처음엔 작고 볼품없는 나무였는데 자신의 이런 처지를 슬퍼하자 신이 여러번에 걸처 소원을 들어주어서 크고 튼튼하고 열매도 있는 나무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래도 만족하질 못하고 자꾸 불평하며 다른 것을 더 갖고 싶어 하는 바오밥 나무에게 화가 난 신이, 다시는 아무런 불평도 못하게 뽑아서 거꾸로 심어버렸다고 해요.(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나무는 이파리로 말을 하나 봐요. ㅎ) 그래서 지금 같은 외형을 가졌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왕자의 바오밥 나무를 '나쁜 습관'에 대입시킨 것처럼, 전설 속의 바오밥 나무는 '욕심'에 관한 경종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바오밥 나무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다른 동화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예요. 전설은 그렇다 치고~ 결국엔 인간에게 많은 걸 나눠주는 유용한 나무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린 왕자도 이렇게 말했나 봐요. '미리미리 싹을 뽑지 않으면 바오밥 나무가 행성을 산산조각 낼지도 몰라. 만약, 당신의 별이 아주 작은데 바오밥 나무가 너무 많다면.'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초록별은 소행성 B612처럼 그리 작지도 않고, 바오밥 나무도 흔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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