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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Apr 01. 2019

남편과 주말 하루를 반드시 따로 보내는 이유

혼자 있는 시간은 내 것을 만드는 시간

인연이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연애에 잠시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인데 본인이 생각해보니 스무 살 이후 서른 넘은 지금까지 연애를 쉰 기간이 불과 100일 이내였다고. 세어보고 스스로도 놀랐단다.


"너 나이도 찼는데 빨리 좋은 남자 찾아 결혼해"라는 말 따위는 친구의 행복에 별 관심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었으리라. 나는 더없는 좋은 시간이니 여유를 충분히 만끽하라는 말을 해주었다.


이미 결혼한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기만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사람이 크게 자라는 시간은 "혼자 있을 때"라고 믿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우린 혼자 있는 시간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 여긴다. 역설적이게도 이 생각이 우릴 결혼하게 했으며 결혼 이후의 삶도 순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 부부는 연애 때 일주일 중 토요일에 하루 만나 놀고 일요일은 서로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에도 그 원칙은 자연스레 지켜지고 있다(평일에는 매일 보게 되었지만). 토요일엔 둘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일요일은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 토요일엔 남편과 실컷 돈을 쓰고 먹고 사람 많은 곳을 늦게까지 돌아다닌다. 눈여겨보았던 맛집에도 가보고 흥행하는 영화도 보고 큰 쇼핑몰에도 놀러 다닌다.


다음 날 일요일은 어제 쓴 카드내역서를 보며 '하루 동안 돈 펑펑 쓰고 내일부터 닷새를 노동해야 하는 이 굴레는 무엇이란 말인가.' 따위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날이다. 전 날은 다른 사람들이 가본 곳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거나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산다면 일요일은 오직 나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쌓고 만든다. 이를 테면 취향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창작물이라든가. 그래서 일요일엔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남편의 취향과는 영 거리가 먼 영화를 본다. 요샌 호감 있는 국가의 언어도 배운다.


부부로서 둘이 하는 시간은 참 소중하고 즐겁다.

그렇지만 이 재미에 비견하여 혼자 보내는 시간이 결코 외롭고 초라하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 누구와 공유할 수 없는 "내 것"을 생산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나 소비하는 날과는 질적으로 다른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소비생활은 둘 이상도 함께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 생산활동은 오직 나 혼자만 해야 하는 사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내게 일요일은 남들과 구분되는 나의 생각, 나의 개성을 만드는 시이다.


남들의 의견에 주로 맞추어주는 성향을 가진 남편의 일요일은 타인을 벗어나 시간을 마음껏 보낼 수 있는 귀중한 날이다. 평소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그라면 일요일엔 이런 양보가 없는 날이다. 남들 눈엔 와이프의 의견에 아무런 불평 없이 맞추어주는 남편이 자상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에게도 취향이 있고 휴식이 필요하단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일요일은 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를 하는 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 둘이 함께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한 집안에 있다 보면 서로 다른 일을 하거나 말을 섞지 않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의식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이런 피로를 덜어줄 수 있는 시간이 부부 사이에 필요하다.


결혼생활뿐 아니라 연애할 때도 모든 생활이 상대에 맞춰져 있었다면 그와 잠시 떨어져 나만의 것을 만들어 보거나 자신에게 휴식을 주는 것도 썩 괜찮은 대안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나의 반짝반짝한 개성과 여유 있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큰 매력과 위안으로 다가올 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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