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글들을 엮은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책의 도입부가 된 브런치 첫 글을 쓸 땐,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부부의 이야기라 정체성을 못 박고 글을 썼다. 하지만 내가 쓴 모든 글을 모으고 엮고 보니 여성 화자가 쓴 '출산 파업'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혼했지만 어쩌다가 출산을 거부하게 되었을까. 책을 덮고 내 인식의 뿌리를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수많은 여자들과 지낸 나는 항상 궁금했다. 왜 이리 많은 여자들은 자존감이 낮을까. 우리 세대 여자들은 개국 이래 가장 영특하고, 능력 있다. 외양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꾸밀 줄 안다. 근데도 많은 여자들은 너무 쉽게 자신을 비하하고, 열등감을 느끼며,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도대체 왜?
나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그건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이 시대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때론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공부 잘하는 여학생에게 '여잔 공부 잘하는 것보단 예뻐야 돼.'라는 말은 직장인 여성에게 '여잔 능력보단 시집을 잘 가야 돼'라는 말로 진화한다. 정작 직업 없이 살림하고 육아하는 여자에게는 '능력 없이 남편 등에 빨대 꼽고 사는 여자' 라거나 그 여자의 외모가 출중하면 '몸뚱이 하나로 평생을 편하게 산다.'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는다.
결국 여자는 제 앞가림할 능력도 갖춤과 동시에 비교적 좋은 경제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야 하며, 결혼하면 남편과 시부모도 살뜰히 챙겨야 한다. 아이도 현명하게 잘 키워내고 거기다가 외모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는다. 하나라도 실패하면 바로 저질스러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나의 선택과 태도가 시시각각 평가에 노출된 여성들은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 힘들다. 그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보통의 노력만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워킹 맘이니 슈퍼맘이니 이젠 기본 값이다. (당장 지금은 전업 맘이라 해도 많은 이들은 향후 일할 계획을 갖고 있으니.)
최근엔 언론들이 만삭 연예인 임신부들의 '완벽한 D라인'을 대놓고 칭송하는 행태를 목격했다. 팔다리는 살이 안 붙고 오직 배만 볼록 나온 게 '완벽한 D라인'이란다. 임신한 여성들조차 몸매에 신경 써야 하고, 살이 찌면 날씬한 임신부를 보며 자괴감에 빠지고.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더 할 수 있는거지?
아름다운 D라인을 칭송하는 기사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난 거부했다. 아예 비교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가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여성이 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일을 포기하지 않은 채 사회적 기준에 맞는 "좋은 엄마"가 될 자신도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윗세대 여성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내 일을 하면서 육아까지 가능한 묘안부터 떠오르지 않는다. 환갑 나이에 또다시 육아의 굴레에 빠지는 엄마 세대의 여성들을 보면서 희생의 끝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게 다 이 사회가 여성의 희생과 양보를 당연하게 여긴 결과가 아닐는지.
그러면서 국가는 저출산을 걱정한다. 인구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모성을 이렇게 대접하고 평가하는 걸 방관하는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의 젊은 여자들은 자신의 것을 깎아내는 순종이나 인내를 미덕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어린 미혼의 여성들은 10명 중 8명은 결혼을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단다. (출처: 통계청 2018년도 사회조사.)이런 작금의 현실들에 나만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거니와 이 피로감을 최대한 피하려 결혼이나 출산을 외면하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선을 넘어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를.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아이를 키우든 그렇지 않든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했으면 좋겠다.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향후 더 많은 여성들과 행복과 자존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