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역시 책을 이 곳 저곳에 알리려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발적으로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부부’의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나온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책의 소재를 둘러싼 열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후끈했다.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 포스트에 달린 모든 댓글을 읽어보았다. 그중 유독 반복하여 눈에 밟히는 댓글들이 있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을 모르는 철없고 불쌍한 딩크족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못 보는 딩크족들이 안타깝다'는 댓글들이 바로 그것.
현실에서도 숱하게 듣고도 피곤한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죠 뭐~’ 재미없는 반응으로 넘겼던 말들이었다. 같은 말을 또 들었지만 나는 이제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부부 둘이 사는 행복’을 말하는 책의 저자까지 된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아 진 것이다.
만약 내가 저 댓글에 이렇게 답변한다면 어떨까?
"취미로 끄적거리던 글들로 책을 내서 저자가 된 기분을 아시나요? 내 책 한 권쯤 써서 국립도서관에 이름 석 자를 길이길이 남겨야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겠어요? 이 기분을 모르시다니 허무하실 것 같아요. 불쌍하다."
나 자신이 내뱉은 말이긴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정말 저런 말을 하는 자가 있다면 너무 거만하고 무례해서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의 미천한 경험에 빗대어 절대 저런 식으로 무례함을 범하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서울대 출신인 사람이 '너네는 서울대에 합격한 기분 같은 거 평생 알 일이 없어서 어떡해? 불쌍하다.' 아니면 잠실의 90억짜리 집에 사는 사람이 '너네는 평생 이 높고 넓은 집에서 노을을 매일 감상하는 그 기분 모를 테지? 안타깝다야'라고 말한다면?
정작 그 사람의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은 하나도 전달되지 않고 그저 '뭐야, 쟤. 좀 이상하다.' 생각만 드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그 태도 때문에 말이다.
'아이 키우는 기쁨'을 나에게 전해주려는 사람들 중 몇몇의 사람들이 '무례한 언사'를 자랑스레 구사한다.어차피 사람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이나 감정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고, 사람마다 가진 관점이 다르니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는 전부 같을 수도 없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해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런데 내경험을 타인의 다른 경험에 견주어 '비교해보니 내가 선택한 경험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은데?'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건 좀 유치하지 않나.
이럴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많은 사람들은 경험이나 행복에도 명확한 '정답' 이 있는 것처럼 사는 것 같다고. 어릴 때부터 객관식 문제를 너무 많이 푼 탓일까. 행복도 5점 척도 같은 객관적인 수치로 서열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아이 낳고 키우는 게 5점 만점짜리 행복이지! 나머지 경험은 다5점 미만이야.” 이렇게 여기는 것 같다.
그뿐 아니다.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월급 200만 원 대 외벌이 아빠와 주부 엄마, 그리고 아이 셋도 잘 살아진다.’라는 글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해도 가족들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글이었는데 타인들이 그들의 행복을 부정하고 나섰다. 많은 가능성이 제한된 그 수입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며. 엄마는 만족할지 모르지만 자식들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며.
그걸 보고 다시금 느꼈다.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 땅에서 온전히 행복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일정한 조건을 달성해야 하는구나, 사람들이 정한 자격을 충족해야 하는구나. 어느 객관적인 조건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아이가 없는 부부이거나 많지 않은 수입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의 행복하다는 말조차 믿지 않는구나. 이 땅에서 행복은 어느새 타인과 비교하고 서열화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남편과 둘이 평화롭게 사는 현재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비록 남들은 미완의 그림이라고 할지 언정.
세상은 행복에 너무나 많은 조건을 요구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느끼는 행복에는 그리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음을. 이 글을 내 페이지에 올리면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 소통을 하게 될지 상상해보면 행복하다. 방금 내 책 표지를 손으로 한 번 쓸었는데 그 순간 역시 행복했다. 오늘 점심, 날씨 좋은 날 따스한 볕을 맞으며 산책했다는 사소한 이유로도 행복해했다. 나에게 “아이 없는 미완의 행복”이라는 관점은 그 시선을 가진 자들의 불안함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들의 시선과 내 기준에 명확한 경계선을 그으니 한 번 더 행복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덧붙여 아이 키우는 기쁨을 내게 전도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그 예쁜 마음을 정중하고 세련되게 담을 수 있는 화법으로 표현하는 게 어떠실지. 현실에서 ‘아이가 주는 행복을 모른다니 안타깝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도 저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 아이를 키워보고 싶다!라는 생각보다는 '빨리 저 사람을 피하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