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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May 10. 2020

며느리는 시부모님 앞에서 딩크족을 선언했다

첫 저서 출간은 나에게 주장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일명 ‘밀레니얼 세대’라 일컫는 우리 세대 며느리들은 가부장제 질서와 풍습을 당당하게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 낳지 않는 이유’를 책 한 권으로 써서 시부모님께 전달하는 며느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부부가 무자녀의 삶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책 한 권은커녕 시부모님께 직접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며느리의 사례조차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토록 이상한 그 일을 얼마 전의 내가 해냈다.


나는 서른이 조금 넘는 해를 사는 동안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선택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틀에 벗어나지 않는 삶의 형태를 착실하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었다. 타인들과는 구분되는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긴 했으나 열여섯 해 동안 성실하고 무난한 학생으로 살았고, 만 나이 서른이 채 안되었을 무렵 결혼을 했다. 지금은 하루 여덟 시간 사무실에 앉아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이다. 하지만 나는 첫 저서를 출간함으로써 주변에서는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듣도 보도 못한 다소 기이한 며느리가 되었다.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저서를 시부모님께 전달해드린 건 4월 어느 주 주말이었다. ‘지난날의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이야말로 정형적인 삶의 형태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시부모님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우리 부부의 의중은 이미 알고 계시긴 했으나 그래도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굳게 믿고 계셨다. 결혼한 지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아이 갖기를 독촉하신 적은 없지만 은연중에 오고 가는 대화를 통해 이런 믿음을 미루어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내 책의 출간은 이런 기대에 ‘희망 없음’이라는 방점을 찍는 일이었다. 책이 나오고서야 제목을 처음 들으신 시어머니는 그 날 잠을 다 설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 분위기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시부모님과 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책 제목만 알려드리고 책을 찾아 읽는 문제는 그분들의 선택에 맡기고 싶었다. 후처리는 시부모님의 아들인 남편에게 맡기자는 생각도 솔직히 없진 않았다. 나보다 시부모님을 더 잘 알고, 훨씬 부드럽고 완곡한 화법을 사용하는 남편을 중간 역할로 삼아 시부모님과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게 더 나은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안에서 불쑥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글을 쓴 건 나인데 왜 글에 대한 책임은 남편한테 맡기려는 거야? 세상을 설득하는 글을 쓰겠다면서 정작 지인들을 설득하는 일은 두려워하다니. 글은 번지르르하게 써놓고 글 밖에선 내 몸, 내 삶에 대한 권리 주장을 타인의 입을 통해 전달하려 하다니. 너무 이상하고 비겁한 작가다.’


나의 첫 저서는 브런치 필명이 아닌 나의 본명으로 나왔다. 브런치 필명을 사용해 익명 뒤에 숨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책은 표면적으로 기혼 여성으로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메시지는 내 삶을 설계할 주도권, 내 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는 이야기다. 나아가 남편과 결혼함으로써 나는 부모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여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기도 했다. 런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조금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본명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쓰기 뿐 아니라 말하는 주체도 내 이름을 사용하는 내가 되어야 했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내가 아니면 누가 말해야 할까? 나 대신 내 권리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게 설령 남편이라고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 내 뜻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밖에 없다. 나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나  다움'을 찾는 여정들은 아니었을까

나의 이름이 적힌 책을 직접 시부모님께 전달드렸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어머님, 저희는 오랫동안 상의 끝에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어요. 우리 둘만 잘 살아볼게요.”


그 말을 내뱉자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내 삶은 책을 내기 이전, 아니 글을 쓰기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글을 쓰는 일은 내면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쏟아는 작업이었다. 혼자서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대면하며 써 내려갔던 문장들은 곧 체계적인 생각이 되어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모니터뿐  아니라 사람을 대면하며 입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가 되기도 했다. 나의 언어로 나 자신을 설득해본 경험이 있으니 누군가에게 직접 내 뜻을 전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난관이 아니었다. 나의 글쓰기는 타인과 대면할 수 있는 근거와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된 셈이다.  


통념에 비추어보면 나는 정말 이상하고 별난 며느리이다.

하지만 내 언어와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했다. 내게 이상하고 어색한 것은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상황과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차라리 '이상한 며느리'가 되더라도 나다운 행동을 하는 것을 택했다.


나는 앞으로도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내 생각과 삶에 대해서 말이다. 나다운 언어와 행동을 유지한 채로 스스로 나를 지켜 갈 것이다.



이미지 출처

작가 이름 Phan Phan

브런치: http://brunch.co.kr/@phanp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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