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샘 Jun 17. 2020

시부모님과 반드시 친해져야만 하나요

친해져야만 한다는 목표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자주 보고, 자주 연락해야 빨리 친해지지.”

결혼으로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 간의 관계이다. 청첩장을 줄 때부터 이 사람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진지하게 가늠해보고, 나의 결혼식에 참석해준 기준으로 결혼 후에도 이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할 것 인지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방만했던 인간관계를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로 간출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의 주말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몇몇 지인들만 남기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결혼한 여성들은 주말 일정이 여유롭지 않다. 결혼으로 인하여 새롭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의 일정으로 주말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남편 가족들과의 만남이 나의 주말 일정에도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나에게 결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의 행사를 주기적으로 챙기는 일보다 더 어색한 일은 따로 있었다. 남편의 가족들과 며느리는 반드시 ‘친해져야만 하는 관계’라고 여겨지는 것. 게다가 얼굴을 자주 보고, 서로 자주 연락하면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수행하고 있단 것. 결혼하고 나서 달라진 건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개념까지도 달라져야 하는 건가 싶었다.

사람 사이에서 반드시 ‘친해져야만 하는 관계’란 개념이 성립할 수가 있나? ‘친해질 수 있는’  관계라면 몰라도.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취향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부분에서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이들과 친해져야만 한다니. 사람들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고 사근사근 사교적인 성격과 영 거리가 먼 나에게 이런 임무는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친해지기 위해서 자주 만나고, 자주 연락해야 한다는 건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창 시절에도 오랫동안 짝꿍은 한 아이라고 하여 무조건 친해지지도 않았고, 3년 내내 다른 반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나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 결국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과 연락을 하게 되는 거고,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과 자주 만남을 약속하는 것 아닌가. 남편의 가족들과는 생신과 명절 등 일 년에 대 여섯 번의 만남이 고정되어 있다. 이 예정된 만남의 횟수도 그분들과 내가 과연 친해질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 파악하기란 그리 모자란 시간은 아니다.

어떤 사람과 친해진다는 말 이면에는 두 사람의 말들과 행동거지들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었다는 속뜻이 숨어있다. 60대 어른인 시부모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호감을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 건 결국 며느리인 내 입장이었다. 그분들의 마음에 들만한 말이나 행동들을 해야 하고, 그분들이 서운한 감정이 들어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기 위해 자주 연락도 드리고 찾아뵙는 등의 노력도 며느리인 나에게 부과되는 임무들이었다.

나는 내 의견을 깎고, 내 감정을 죽여 '화목하고 친밀한 관계'라는 틀에 나를 맞출 수 없었다. 그 위태로운 관계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나의 정신 근력은 역부족이었다. 그 관계를 후들거리고 감당하다 보면 무게로 비롯된 파장이 남편과 나의 관계마저 흔들어 버릴 수 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가족들과 친해져야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렸다. 대신 그분들은 반드시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남편과 나는 전적으로 서로에 매력에 이끌려 결혼했을 뿐, 애초에 내가 그분들의 호감까지 얻어 결혼한 것은 아니므로 당연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어야 하고, 친해지기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두 어달 전, 시부모님께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과정과 이유를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 내 저서까지 직접 전달드렸다. 시부모님과 친밀하고 화목한 관계를 만드는 게 일 순위 목표였다면 나는 이런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물론 내 본명으로 책을 쓸 용기를 못 내었을 것이다. 아니면 나의 많은 부분을 시부모님께는 철저히 은폐한 채 살거나.

얼마 전 시어머니는 시댁에서 있던 가족 모임 뒤, 조용히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그 날 드린 내 책을 다 읽어보셨다며 미안하단 말씀을 하셨다. 자신이 자칫하면 우리 부부 삶의 영역에 침범할 뻔했노라고. 나는 어머님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말씀드렸다. 40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길러 내는 일이 단 한 번도 질린 적 없었다는 분이시다. 근데 정작 본인의 손주는 만날 일 없게 되었으니 그 심정 오죽할까.

어머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결혼 전 남편이 쓰던 방 책꽂이에 내 책 몇 권이 꽂혀있었다. 어머님이 따로 몇 권 더 구매하신 것 같았다. 며느리가 썼다고 말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이라 지인들에게 소개는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 사실 사비로 몇 권 더 사실 줄도 몰랐는데. 벌써 5년을 보았지만 나도 어머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피식 웃음이 났다.

조만간 어머님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어머님의 직장 근처 추어탕 맛집이 있다고 하니 추어탕에 소주 한 잔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보다 조금 더 느리더라도 서로의 사이가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피기 시작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만의 속도로.

매거진의 이전글 며느리는 시부모님 앞에서 딩크족을 선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