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 작가
나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이따금씩 글을 쓰기도 하는 사람, 양양이다.
제주가 좋아 틈만 나면 여행하다가, 한 여섯 달 머무르며 살아보기도 하다가, 드디어 작년에 아주 짐을 싸서 내려와 버렸으니 이제 나도 어엿한 섬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 못 가 본 곳 많고 걸어야 할 길 많지만 단 하루를 머물러도 “오, 나의 제주!”라고 말할 수 있으니,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제주의 마을과 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프로젝트 <나다운 진짜 제주>는 나답게 제주도를 경험하고 있는 제주 로컬 8인에게서 영감을 얻었어요.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자가 제주에서 나다움을 실현하길 바라요. 소수만 알고 있는 제주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여행하려 해요. 우리가 소개할 가장 제주다운 동네, 작은 가게, 숨은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어요. 훗날 마음에 담아둔 제주 곳곳에서 “나다운 진짜 여행”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몇 년 전, 집을 구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지냈던 곳은 동쪽 끝에 위치한 ‘종달리’라 불리는 마을이다.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소심한 책방’ 덕분이었다. 지금이야 작은 동네책방이 여기저기 많이도 생겼지만, 그 시절에는 소심한 책방과 서울의 책방 몇 군데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나는 첫 에세이집을 발표했고, 고맙게도 소심한 책방에서 북 콘서트를 하게 되어 두 주인장과 친구가 되었다. 책을 끔찍이도 사랑하여 아예 책방을 열어버린 두 친구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달리 골목 한 켠을 지키며 세상을 한 뼘 더 근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소심한 책방을 격렬하게 아끼던 나는 요즘 주말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서쪽 끝(내가 사는 곳은 서쪽 바다이다.)에서 동쪽 끝 책방까지는 아주 먼 길이지만 그 여정이 내게는 곧 여행이다. 그리고 책들과, 고요히 놓인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그 오고 감을 지켜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뻔하고 의미 없는 기념품 대신, 길 위에서 책 한 권 고요히 만나고 그것을 배낭에 실어 가면 어떤가? 분명 제주에서의 시간과 마음이 더욱 깊어질 거라 믿는다.
인스타그램: @sosimbook
※ 지금은 임시공간에서 영업 중이다. 영업시간과 장소 이전 일정이 유동적이니 인스타그램을 확인할 것.
☎ 070-8147-0848
책방 바로 건너편에는 종달리의 자랑, ‘지미 오름(지미봉)’이 있다. 사실 자랑이라고 한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곳에 올랐을 적에 그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고, 이 마을을 넘어 제주를 커다랗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숨이 차오를 만큼 가파른 숲길을 오르다 보면 “아, 그냥 내려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몇 번 찾아올 것이다. 딱 그 순간에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보자.(놀랍게도 바로 그 지점에 나무 의자가 놓여 있는데 누구에게나 힘든 것은 다 똑같은 거다.) 돌아보자마자 다음과 같이 느낄 것이다. “아, 내 두 다리로 잘 왔구나, 많이 왔구나!” 자신에 대한 대견한 마음과 함께 저 멀리 풍경이 눈 안에 차 오를 것이다. 그러면 다 온 거다. 마지막 몇 걸음 내딛으면 봉우리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그 풍경 이야기는 지금 애써 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 봐야 하니까. 오름 위에 올라서서 장난감 같은 집들과 자동차들, 그리고 저 멀리까지 펼쳐진 바다와 마을, 오름들, 제주의 땅에서만 볼 수 있는 까만 밭들을 바라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사랑’ 같이 커다란 것들, ‘삶’ 같이 애틋한 것들을 생각하다 결국에는 아무 생각 없어지고 만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풍경들과 함께 숨을 좀 돌렸다면 내려갈 땐 올랐던 길 말고 다른 길로 내려가기를 추천한다. 마침 그 옆에 새로운 길이 하나 있고, 새로운 길은 조금 두렵지만 동시에 커다란 설렘을 줄 테니까. 길이 좁아서 손을 내밀면 풀잎들과 절로 하이파이브,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그렇게 신나게 땅에 내려오면 여기가 어딘가 하겠지만 쭉 따라 걷다 보면 평평한 숲길이 시작된다. 지금, 이 봄의 숲길에는 온갖 풀 향기가 코를 찌르고 있다. 비밀의 숲을 지나며 계절을 만나다 보면 처음 출발했던 입구가 나온다. 건강하고 상쾌하다는 것,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까지 느끼며 몸이 어느 때보다도 가벼워질 것이다.
♢ 주차 가능
지미봉 입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종달리 해안도로에 닿을 수 있다. 제주는 섬이니까, 섬은 어느 쪽이든 바다를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이것만큼 흔하면서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내가 제주에 살면서 가장 감격하는 것은 슈퍼를 가는 길에도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이다!) 서쪽은 서쪽대로, 동쪽은 동쪽대로, 해 뜨면 쨍한 대로, 바람 불면 일렁이고, 비 오면 검푸른 대로, 제주의 바다는 아름답게 곁에 머문다. 종달리 바닷길에 서면 오른쪽으로는 성산일출봉이, 왼쪽으로는 우도가 한 장면 안에 평온하게 놓여있다.
자동차로 달려도 좋지만,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중간중간 멈추어 작은 전망대도 오를 수 있고,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휴식을 취하는 불턱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을 수도 있다. 5월 말에서 6월이 되면 그 길가에 수국이 또 얼마나 싱그럽게 피는지. 그러고는 다시 펼쳐진 하도 바다! 바다를 만나면 걸어온 길이 벅차서 크게 웃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영영 돌아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성산, 왼쪽으로 가면 수국길과 하도로 갈 수 있다.
그래도 돌아가야 한다면 이곳에서 막걸리는 한잔하고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방금 걸었던 종달리 해안도로, 우도로 가는 선착장 앞에 있는 식당, ‘종달 해녀의 집’에서 말이다. 맛집 멋집이 난무하는 세상에, 오래전부터 마을과 함께 있어왔던 소박한 식당이라면 어떤가, 오늘의 길 혹은 여행의 오후와 아주 어울리지 않을까. 바다 맛 진하게 품은 해산물 한 접시에 자글자글 생선 조림을 주문한 후, 밥보다 막걸리 한 사발을 먼저 들이킨다.(제주에 살며 아주 감격하는 두 번째는 바로 이 ‘제주막걸리’이다!) 달지 않고 건강한 맛이 나는 제주막걸리에, 막걸리보다 달달한 뿔소라나 전복 한 점 오독오독 씹으면 “캬아! 이 맛이 제주다, 나 제주다” 소리가 절로 나게 되어있다. 먹다 보면 함께 오지 못한 얼굴들이 자꾸만 떠올라 “이를 어째”,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라산 소주 한 병 추가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이 맛 또한 말해 무엇하랴!)
매일 08:15 ~ 21:00
※ 정기 휴일은 없지만 급한 일이 있을 때 문을 닫는다고 하시니 방문 전에 전화 문의는 필수다
☎ 0507-1411-1752
이것이 끝인가? 가야 할 곳이 아직도 한참 많은 것을. 종달리에 오게 된다면 더 천천히 더 많이 걸으셨으면 좋겠다. 낮고 너른 종달리의 골목골목을 더 깊숙이 걸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작은 구멍가게를 만나고, 나무 아래 쉬고 계신 삼춘들을 만나고, 오토바이 타고 가시는 귀여운 할머니를 만나고, 흔들거리는 억새를 만나고, 우아한 백로와 물새들을 만나고, 동네 강아지 두 마리를 만나고, 모르던 새 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온전히 종달리를 살면 종달, 종달, 당신만 아는 새소리 하나 마음에 날아들지 않을까. 종달, 종달, 종달...
글: 양양
사진: 류정철
에디터: 지은경
제작: 마이리얼트립
✈ 마이리얼트립에서 나다운 진짜 제주여행